세계 축구계 최고의 시장가치를 자랑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과연 재개될 수 있을까. 영국 현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가 갈수록 맹위를 떨치면서 이는 현지는 물론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관심사다. 21일(현지시간) 스포츠전문매체 디애슬레틱은 지난 19일 열렸던 EPL 사무국 및 구단 관계자 회의 후기를 보도했다.
이 회의에서 표면적으로 알려진 건 다음달 30일까지 리그를 중단한다는 결정이다. 그러나 해당 날짜는 각 구단들에게 최소한의 기준선을 제공했을 뿐이라는 게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실적으로 4월 30일 직후 리그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상태다.
한 구단 경영진은 디애슬레틱에 “이제 선수들에게 3주 휴가를 줄 수 있게 됐다”면서 “일주일마다 계속해서 일정을 미룰수는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기준점을 5월 30일 정도로 너무 길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상황이 심각한데 그보다 빨리 당길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회의에서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클럽은 설사 무관중 경기 등 극단적인 조치를 해서라도 5월 말 리그가 재개되도록 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일정을 미룰 경우 또다른 의문점은 다음 시즌 시작 시점이다. 선수들에게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여름 휴식기간인 6주가 줄어든다면 선수들의 몸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이적시장 역시 여기 맞물린다. 시즌 종료 일정에 맞춰 계약을 맺은 선수들을 어떻게 할지가 문제다. 디애슬렌틱에 따르면 이번 회의에서는 선수협회(PFA)의 동의를 받아 계약을 일괄적으로 미루자는 제안도 나왔다.
일각에서 제기된 ‘시즌 무효론’은 이번 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앞서 캐런 브레이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부회장은 현지 일간 더선에 “전체 시즌을 중단하고 무효화하는 게 유일하게 이성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회의에서 브레이디 부회장과 폴 바버 브라이튼&호브앨비언 수석경영자는 아직 코로나19 사태의 규모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시즌을 끝까지 마친다고 말하는 게 현실적인가 의문을 제기했다.
대부분 구단은 이번 회의에서 시즌을 끝까지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해다. 시즌을 마치지 못할 경우 입을 재정적 타격이 구단들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디에슬렌틱에 따르면 시즌이 이대로 조기종료될 시 EPL 구단들은 중계권을 가진 스카이스포츠, BT스포츠에 총 7억6200만 파운드(약 1조1200억원)를 돌려줘야 한다. 에드 우드워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부회장은 9월이나 10월에 시즌이 이어지더라도 끝까지 일정을 끝내야 된다고 주장했다. 시즌을 무효화할 경우 2부리그 챔피언십에서 승격을 눈앞에 둔 구단들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시즌 재개를 원하는 구단들의 입장을 ‘탐욕’으로만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구단 경영자는 “문제가 되는 건 단지 구단의 1군 선수들뿐만 아니라 창구, 식당 직원부터 계약직 등 생계가 구단에 걸린 사람들 모두”라면서 “구단의 수입이 없어지면 이 사람들에게 갈 돈부터 깎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큰 구단들은 지출도 크다. 수백 수천이 아니라 수억 파운드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구단 경영자는 “우리가 하기로 한 쇼를 하지 않으면 돈을 받지 못한다. 시즌을 끝까지 하지 않으면 엄청나게 큰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단지 중계권료 뿐만이 아니라 스폰서들도 TV에 노출이 안되기 때문에 돈을 안줄 것이다. 경기당 500만~600만 파운드(약 74~88억원)에 이르는 입장권 수입도 타격”이라고 설명했다.
시즌 무효론이 논의되지 않으면서 시즌 조기종료 시 리그 현 선두 리버풀의 우승을 확정지을지 여부도 논의되지 않았다. 앞서 잉글랜드 대표팀 출신 해설자 앨런 시어러는 “시즌이 조기종료됐을 때 리버풀에게 우승컵을 주는 건 불공평하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디애슬렌틱은 이번 회의에서 리그 순위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차후 현재 리그 강등권에 위치한 팀들을 실제로 강등시킬 가능성이 생긴다면 이 역시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회의장 바깥에서는 이색 제안도 나왔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해설자 게리 네빌은 스카이스포츠의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안전하다는 조건 하에서 한꺼번에 9일 경기를 연달아 치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축구가 희망과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단 관계자들은 의도는 좋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의견이라고 일축했다. 선수들이 그같은 신체적 부담을 지려고 할 리도 없을 뿐더러 구단들 역시 선수들의 부상위험을 높이는 일을 원치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