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2배 경쟁”…‘채용 올스톱’ 취준생들 답답한 속사정

입력 2020-03-21 07:41
“가뜩이나 힘든 취업 시장인데 지금은 더 참담하죠”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건 알지만 힘드네요. 기회조차 없으니까”

게티이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취업준비생들의 한숨이 깊어지는 중이다. 취업 준비부터 채용 일정까지 취업문을 향하는 모든 이정표가 불투명해지면서 길 잃은 청년들은 막막함에 빠져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공채를 준비 중인 이모(26·여)씨는 채용정보 사이트에서 공고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목표하던 기업들이 공채 날짜를 잠정 연기했다”며 “4월이면 정상화가 될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상 기약 없는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고 답답해 했다.

채용정보 사이트 ‘잡코리아’에 따르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197개 회사를 조사한 결과 올해 상반기 대졸 신입 채용 계획이 작년보다 15%쯤 감소할 전망이다. 현대, 한화, GS 등 많은 기업이 채용 일정을 잠정 중단하거나 재고 중이다.

“채용이 연기된 기간 동안 준비를 더 하면 되지 않냐”는 말은 취업준비생들에게 한숨을 보탠다. 그들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닌데 지금은 그 ‘준비’를 하는 상황 자체가 마땅치 않다.

취업 준비생들이 많이 응시하는 자격시험들이 잇따라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토익은 3월 29일 시험이 취소됐고 4월 시험 역시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시행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컴퓨터활용능력, 전산회계운용사 등의 자격검정도 31일까지 중단됐다. 이밖에 많은 시험도 코로나19 확산세를 보면서 시행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대기업공채를 준비 중인 조모(26·여)씨는 “이번 달에 컴퓨터활용능력과 중국어 HSK 급수를 취득하려 했는데 모두 연기됐다”며 “공채가 언제 뜰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격증 시험까지 늦어지니까 심리적으로 엄청 불안하다. 계획들이 다 틀어지는 상황에서 오는 무기력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대학생들의 대표적 스펙인 대외활동 역시 어려워졌다. 모집 자체를 취소하거나 일정을 잠정 연기한 곳이 많아졌다. 활동을 축소해서 시작했더라도 의미 있는 기회를 얻긴 힘들다고 말한다. 대학생 황모(24·남)씨는 “기대하던 대외활동의 출단식을 비대면 화상회의로 진행했다”며 “그야말로 엉망이었다”고 표현했다.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아 너무 산만했다”는 의견이다.

심지어 인턴 채용이 취소된 경우도 있었다. 직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인턴은 취업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취업준비생들에게 가장 큰 스펙 중 하나로 꼽힌다. 이모(25·남)씨는 “인턴에 합격했는데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일단 대기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언제 출근할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정된 채용이 어렵겠다면서 취소 통보를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취업준비생들이 마냥 울상만 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법을 찾고 있지만 다잡은 마음이 현실에 부딪힐 때마다 허탈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심모(27·남)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 기회를 얻었지만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원래 계획은 인턴과 스터디를 병행하다가 인턴 기간이 끝날 때쯤 공채 지원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스터디는 스터디대로 다 없어졌고 채용은 또 채용대로 미뤄지니까 그 비는 시간 속에서 뭘 해야 좋을지 불안감이 커진다”고 말했다.

금융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김모(26·남)씨도 비슷한 어려움을 털어놨다. “시험이 어려워서 준비생들과 스터디가 필요하다. 발표나 토론 면접도 같이 연습한다. 원래는 일주일에 세 번씩 학교 강의실을 대여해서 스터디를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대여가 금지됐다. 온라인 스터디를 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취업 정보를 얻을 기회가 줄어든 것도 취업준비생들의 고민이다.

일부 대학들은 취업·고시 준비생들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 온라인 소통 창구를 활용하고 나섰다. 학생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정보 글을 게시하거나 학내 메신저를 활용해 채용 일정 등을 공지하는 식이다. 코로나19 여파에 대응하는 노력이 늘어나곤 있지만 취업이나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뉴시스

대학교 4학년 신모(25·여)씨는 “이번 학기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할 계획이라 학교 설명회나 학원 상담을 통해 정보를 얻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졌다”고 아쉬워했다. “일단은 혼자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게 최선”이라며 “지금 같은 기간이 길어지면 공부 방향을 잡기가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는 취업·고시를 준비하는 일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박모(25·여)씨는 “그동안 헬스나 수영 같은 운동을 하면서 체력관리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다 못 하니까 좀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다들 같은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다잡으면서 열심히 공부하며 지내고 있다”고 의지를 보였다.

사실상 취업준비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당장의 상황 자체보다도 ‘이것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막연함이다. 거기에 이번에 취업하지 못한 준비생들이 하반기나 내년에 대거 몰리면 경쟁률이 크게 상승할 것이란 예측까지 더해져 취업준비생들의 속 타는 마음을 괴롭게 한다.

연합뉴스

유모(26·남)씨를 비롯한 다수의 취업준비생은 “채용 일정이나 규모에 관해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이라도 미리 알려준다면 걱정이 덜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지금 상황이 워낙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냥 하루빨리 코로나19를 이겨내고 모두가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서지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