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폐렴 증세를 보이다 숨진 17세 고등학생의 유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의료 시스템에서 밀려난 일반 환자들의 현실을 지적했다. 이 학생은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돼 초기 치료 시기를 놓쳤으나, 사망 후 질병관리본부와 서울 소재 대학병원 2곳의 교차 검사에서 최종 음성 판정을 받았다.
사망한 고교생 정모(17)군의 부모는 2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열나는 애를 계속 집에 둬야 하느냐. 아픈 애를 구급차 한번 못 태워주고 보냈다”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정군은 고열 증세로 지난 12일 경북 경산중앙병원 선별진료소를 찾았다가 시간이 늦어 검사를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인 13일 영남대병원에 입원했으나, 5일 만에 숨졌다.
정군의 부모는 아들이 고열에 호흡곤란 증세까지 보였지만 병원 측에서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군의 상태가 악화하자 지난 13일 오후 5시쯤 경산중앙병원을 세 차례 찾아가 상급 의료기관 전원 소견서를 받았고, 구급차를 요청했지만 타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모친이 확인한 정군의 체온은 42도였다고 한다.
정군 어머니는 “세 번째로 병원에 갔을 때 아들은 호흡 곤란 증세로 실신 직전이었다”며 “병원 구급차를 태워달라고 요청했는데 못 탔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안심병원인데도 발열 환자를 따로 두는 곳이 없었다”면서 “두 번째로 병원에 갔을 때는 차 안에 앉은 채 링거를 맞아야 했다”고 덧붙였다.
정군은 이후 아버지가 직접 운전한 차로 18㎞ 떨어진 영남대병원에 갔다. 도로가 막히지 않으면 30분 정도 소요되지만, 퇴근 시간대라 1시간가량 걸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비상등을 켠 채 다리를 덜덜 떨며 운전해서 영남대병원에 갔다”며 “구급차를 타고 가면서 산소호흡기라도 꼈으면 몸이 이 정도로 상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고 했다. 또 “남에게 피해 주기 싫어서 규정을 준수하려고 했는데 바로 상급병원으로 달려갔다면 고통도 없었을 테고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산중앙병원 측은 “당시 약간 숨이 차다는 정도였고 부모님 차가 있어서 아무래도 그걸 타고 가는 게 더 빠르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보건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면 병원에서 보호복을 입고 구급차로 이송해주거나 119에 신고해줬어야 하지 않나 싶다”며 “조치가 매끄럽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유족은 정군이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정군 아버지는 “해열제 하나 받아 집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며 “어지러워서 서지도 못하는 애한테 바보같이 의료진 말대로 미온수에 씻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열을 떨어뜨리려고 목욕탕 벽에 팔을 기대고 애쓰던 그 장면이 잊히질 않는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유족은 정군이 처음부터 코로나19에 감염된 게 아닐 거라고 여겼다고 한다. 정군 아버지가 지난해 8월 항암 치료를 했기에 정군 스스로 감염에 더욱 주의했다는 것이다. 정군 어머니는 “일반 폐렴일 수도 있으니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었다”며 “병원에서는 처음부터 코로나19라고 답을 정해놨지만 우리는 아니라고 봤다”고 말했다.
정군의 형은 “코로나19 때문에 치료도 못 받았는데, 아니라고 판정이 나니 서로 동생의 죽음에 대해 발뺌한다”며 분노했다.
유족은 이날 오후 1시30분쯤 정군을 화장했다. 학교, 성당 관계자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정군 아버지는 “고등학교 3학년인데 아직도 엄마가 뽀뽀하자고 하면 뽀뽀를 해주는 아이였다. 몸도 건강해서 달리기도 잘하고 팔씨름도 잘했다”라며 아들을 그리워했다. 어머니도 “음식물 쓰레기도 알아서 다 버려주고 소파에 누워있으면 맨날 와서는 ‘나는 엄마 같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어…’”라며 울먹였다.
정군이 다닌 고등학교 교장은 “일반 감기로 부모님께 심려를 끼쳐드리기 싫어 끙끙 앓을 만한 친구였다”면서 “평소처럼 동네 병원에 가서 편하게 약을 처방받았더라면 충분히 잘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