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벌은 좋으나 재산에는 뜻이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식자들은 주위의 사람들이 파산지경에 빠지게 되면 그들이 그러한 역경에서 과연 얼마나 참는가를 시험해 보려고 한다.
나도 한때 그런 사람과 사귀어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상당한 지식인으로 노동에는 종사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나는 지도에 색깔을 칠하는 일거리를 그에게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일이라면 어떤 신사라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가 나를 찾아올 때면 그는 자기가 하는 일에 관한 화제를 되도록 피하고 싶어 했으며 자신이 그러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기의 친지들이 알지 못하도록 갖은 애를 다 썼다. (집문당 刊 ‘대한제국멸망사-제2장 민족’ 45쪽)
<계속>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