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10): 미인 회화

입력 2020-03-20 09:42
: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서울 종로2가 ‘진미의 냉차’

그 무렵부터 나는 한국에 가면 서울 종로2가 YMCA호텔에 묵었다. 호텔 건너편에 종로서적과 대한기독교서회가 있었다.

종로서적은 한국 최대·최고의 서점으로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다. 그 서점 계단은 넘치는 고객들 때문에 계단 바닥이 팰 정도로 닳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종로의 뒷골목과 광화문, 서울시청, 서울역, 남대문 등을 카메라로 담았다.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반일감정으로 적대심이 강한 한국에서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친숙하게 지내온 사람들 같았고, 뭔지 모를 연민이 느껴져 틈나는 대로 서울의 풍경을 찍었다.

‘진미의 차 냉차’라고 쓴 리어커 매대를 앞에 놓고 무심히 신문을 읽던 냉차 판매대 주인 남자는 흰 와이셔츠 바람에 말쑥한 청년이었다. 그를 카메라에 담았다.

또 자물쇠와 옛 화폐를 팔던 열쇠공은 열심히 일하느라 카메라가 가까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자크와 구리전선, 숯불 다리미, 은수저 등을 함께 파는 만물상 주인이기도 했다.

서울 종로 피맛골. 1968년 8월 노무라 모토유키가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개발되어 피맛골 골목 일부만 남아 있다.

호텔 뒷골목은 서울의 속살을 보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한두 사람이 어깨를 모로 세워 지나가기에도 힘들 것 같은 골목이 이어졌고, 그 골목마다 다양한 상호의 간판이 돌출되어 있었다.

국수가게, 도장가게, 담뱃가게, 이발가게 등이 즐비했다.

종로는 당시 서울의 중심 상권이기도 해서 ‘미인회화(美人會話)’라고 쓴 영어학원이 자주 눈에 띄었다. 제빵가게와 서점, 병원, 직업안내소 등의 간판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사진을 찍어 인화한 후 한국어 사전을 통해 해독하고서야 어떤 가게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 무렵엔 한자 간판이 많아 간단한 물건을 사는 데는 별 불편이 없었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