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팀 훈련 대신 개인 연습에 전념
“취소보다 두려운 건 기약 없는 기다림”
“맥이 빠지죠. 하지만 견뎌야 합니다. 선수도, 갤러리도 모두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럴 것입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2년차 임희정(20·한화큐셀)은 이달에만 두 번째로 전해진 대회 취소 소식에 익숙한 듯 담담했다. 서운해도 힘을 낼 수밖에 없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단계로 들어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이미 아시아를 할퀴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세계 각국 경기장의 문을 닫았다. 유럽 축구는 중단됐고, 미국 야구는 개막을 미뤘다. 모두가 버티는 일만 반복할 뿐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근황을 묻는 일도 웬만하면 전화나 메시지로 주고받게 된다. 임희정은 KLPGA 투어에서 이달 들어 두 번째로 ‘대회 취소’가 공지된 19일 국민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정작 취소 소식을 들으니 5월에도 출전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어진 비시즌에 연습만 반복하면서 기운이 빠질 때도 있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고 지금의 시간을 알차게 보낼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임희정은 루키 시즌인 지난해 후반부에 3승을 쓸어 담고 뒤늦게 상승세를 탔다. ‘괴물 신인’으로 불렸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마저 중단돼 등락이 거의 없는 세계 랭킹에서 임희정은 24위다. KLPGA 투어 소속 선수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 그렇게 프로 2년차로 넘어왔다. 하지만 지난해 막판의 기세를 넘겨받았어야 할 올봄의 필드는 아직 핀을 세우지 못했다.
KLPGA 투어는 이날 “롯데렌터카 여자오픈,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를 코로나19 확산 여파에 따라 취소했다”고 밝혔다. KLPGA의 대회 취소 공지는 지난 3일 결정된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에 이어 이달 들어서만 두 번째다.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은 다음달 9~12일 제주도에서,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는 그 다음 주인 17~20일 인천에서,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는 같은 달 24~26일 경남 김해에서 차례로 개최될 예정이었다. 모두 코로나19 확산 여파에 휩쓸려 취소됐다.
KLPGA 투어의 2020시즌은 지난해 12월 베트남에서 열린 효성 챔피언십으로 이미 개막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강해진 코로나19 확산세로 인해 3월 일정이 모두 취소됐다. 4월 경기는 말일인 30일 크리스 F&C 제42회 KLPGA 챔피언십 1라운드만 남게 됐다. 이후 최종 4라운드까지 사흘은 5월 1~3일로 편성돼 있다. 올 시즌 국내 티오프는 가까스로 4월을 붙잡고 있지만, 우승자를 확정하는 순간은 5월로 넘어갔다. 이마저도 기약이 어렵다.
임희정은 “이제 2년차에 불과해 국내 일정 지연으로 인한 무게감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언니(선배)들은 조금 다르게 느끼는 것 같다. 서로 ‘무직자가 됐다’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실소를 짓기도 한다”며 “선수, 갤러리 모두 아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건강과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임희정을 포함한 거의 모든 선수가 코로나19 확산 여파에 팀 단위로 움직이지 않고 개인 훈련만 반복하고 있다. 기약도 없이 미뤄지는 국내 개막에 답답한 마음은 국적이나 소속팀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시즌 KLPGA 시상식 전관왕 최혜진(21)의 소속팀인 롯데 골프단은 지난해까지 3월마다 제주도로 모여 팀 훈련을 펼치며 몸을 예열하고 사기를 끌어올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팀 훈련은 엄두도 낼 수 없다.
롯데 골프단 관계자는 “선수들이 피트니스와 개인 훈련으로 매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실전에 들어가지 못해 답답할 수밖에 없다. 시즌을 출발하는 시점이 가시권으로 들어오지 않아 선수들의 마음이 더 답답할 것”이라며 “선수단은 한마음으로 코로나19를 속히 물리쳐 모든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KLPGA는 “선수, 대행사, 후원사, 미디어, 무엇보다 팬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범국가적 위기에서 정부, 지방자치단체, 질병관리본부, 외교부, 세계보건기구(WHO)의 정보와 코로나19의 확산 추세를 유심히 살펴 대회를 정상적으로 개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