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가 “사실이면 총리 그만두겠다”고 한 사학스캔들 재점화

입력 2020-03-19 17:44 수정 2020-03-19 18:03
아키에 여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세상은 왜 이런 식인가. 마지막에 꼬리를 잘리는 건 하부조직이다.”

2017~2018년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을 최대 위기로 몰아넣었던 ‘모리토모 사학 스캔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재무성 상부의 문서 조작 지시로 정권 실세 관련 내용을 빼는 데 가담했다가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하급 실무 공무원의 유서와 수기가 18일 주간지 슈칸분슌에 공개되면서다.

모리토모 스캔들은 일본 정부가 지난 2016년 초등학교 설립을 추진 중이던 사학법인 모리토모학원에 오사카의 국유지 8770㎡를 감정가보다 85%나 낮은 헐값으로 팔아넘겼다는 의혹이다. 1억3400만엔(약 15억8737억원)으로 모리토모학원은 이마저도 전액 국비로 충당했다. 자기 수중의 돈을 들이지 않고 역세권의 금싸라기 땅을 손에 넣은 것이다.

논란이 증폭된 이유는 모리토모학원과 아베 총리 사이 유착관계 때문이었다. 당시 학원 이사장은 거대 극우단체 ‘일본회의’의 임원으로 아베 총리와 친분을 갖고 있었다. 아베의 필생의 과업인 ‘전쟁 가능 국가로의 회귀를 위한 개헌’에도 열성적인 지지를 보냈다. 아베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와의 친분도 두터워 사들인 국유지에 들어선 초등학교의 명예교장으로 여사를 위촉하기도 했다. 아베 내각이 모리토모학원의 국유지 매입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국유지 계약 문서를 공개하라는 여론의 압박에 밀려 일본 재무성이 의회에 제출했던 문건이 조작됐다는 아사히신문 보도가 나오면서 모리토모 스캔들은 정권을 무너뜨릴 위기로 급부상했다. 신문은 2018년 3월 2일 자체 분석결과 문서 원본에 있던 ‘특례’라는 문구가 여러 곳에서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아키에 여사와 집권당인 자민당 정치인 관련 내용들도 빠져있었다. 정부 기관인 재무성이 공문서를 조작한 것이다.

보도 닷새 뒤 재무성 긴키 지역 국유재산 관리 담당 직원 아카기 도시오(당시 54세) 효고현에서 사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에도 이 공무원이 공문서를 위조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는 말들이 무성했다. 이번 슈칸분슌 보도로 소문이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당시 사건에 직접 관여한 인물의 육성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슈칸분슌은 “A4 7장 분량의 수기에는 문서를 조작하게 된 경위와 상부의 부당한 지시에 고통스러워하던 하급 공무원의 심경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고 전했다.

아카기는 수기에 “모리토모 사안은 모든 게 재무성 본부 지시다. 본부가 처리 방침을 정했고 거짓에 거짓을 덧씌웠다. 본부는 도망쳤고 긴키 지부가 모든 책임을 졌다. 무섭고 무책임한 조직이다”라고 썼다. 그는 수기의 끝부분에 “(지시에) 저항했지만 결국 조작에 관여한 자로서 어떻게 책임을 질지 계속 생각해왔다”며 “우리 가족을 울리고 내 아내의 인생을 파괴시킨 건 재무성 본부 이재국이다”라고 밝혔다. 전 재무성 이재국장 사가와 노부히사가 문서조작을 강요한 장본인임을 적시한 것이다.

사가와로부터 처음 문서 조작 지시가 내려온 날은 2017년 2월 26일로 기록돼 있다. 아베 총리는 같은 달 17일 의회에서 “국유지 매각 과정에 나와 아내가 관여했다면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일주일 뒤인 24일 사가와는 “매각과정에서 정치인으로부터의 부당한 압박은 일체 없었다. 문서 기록은 없다. 모두 파기했다”고 밝혔다. 슈칸분슌은 “아베 총리의 말이 문서 조작의 전환점이 됐고, 사가와의 발언 이틀 뒤 조작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아카기의 유족은 슈칸분슌의 보도가 나온 당일 일본 정부를 법원에 고소했다.

보도 이튿 날인 19일 아소 다로 재무상은 각료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해당 문제에 대한 재조사를 지금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