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가 된 교수님, 강의실이 된 카페…‘랜선개강’이 바꾼 대학가 풍경

입력 2020-03-19 17:37 수정 2020-03-19 18:35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한 카페에 지난 17일 학생과 시민들이 가득 차 있는 모습. 연합뉴스

성균관대에 다니는 서모(21)씨는 ‘온라인 개강’ 첫날인 지난 9일 집에서 전공 수업을 듣다가 난데 없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깜짝 놀랐다. 교수가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를 다른 방에 옮겨놓지 않은채 화상수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씨를 비롯해 강의에 참여한 40여명의 학생들은 대화창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며 웃기 시작했지만,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수업을 진행했다. 서씨는 19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지만,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대한민국 대학들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온갖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부산대 김모 교수는 지난 16일 난데 없는 ‘별풍선 세례’를 받았다. 김 교수는 온라인 개인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로 이번학기 강의를 진행하면서 수업 시작 전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아 ‘디제잉 교수’라는 별칭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자 학생들이 수업 도중 장난으로 ‘별풍선’을 보낸 것이다. 일부 학생은 자신의 대화명을 다른 교수 이름으로 바꾼 뒤 “김 교수, 그렇게 수업하면 안돼”라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결국 김 교수는 “다음 수업부터 별풍선을 쏘면 감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야 했다. 별풍선이란 아프리카TV 시청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개인방송 진행자(BJ)에게 생방송 도중 선물하는 일종의 사이버 머니다.

아프리카TV로 진행되는 부산대 온라인 강의에 접속한 학생들이 강의 도중 학생들이 교수에게 '별풍선'을 선물하고 있는 모습. 독자 제공

대학들이 본격적인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 지난 16일 이후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포털사이트 게시판 등에는 웃지 못할 사연에 계속 쏟아지고 있다. 집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을 향한 ’엄마의 꾸지람’ 소리가 수업 도중 그대로 들렸는가 하면, 한 학생이 수업 도중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변기 소리를 모든 학생이 들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또 마이크를 끄지 않은 학생이 수업 내용을 폄훼하는 말이 그대로 생중계돼 교수를 당황하게 만든 일도 벌어졌다.

안정적인 온라인 강의 환경과 수업 분위기 조성을 위해 상당수 학생들이 PC방이나 카페를 찾으면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온라인 강의 전면 도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오전 서울 관악구의 한 PC방에는 오전부터 헤드셋을 끼고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중앙대에 다니는 한 학생은 “집에서는 온라인 강의에 잘 접속이 안되고, 자꾸 늘어질 것 같아 친구와 함께 강의를 들으러 나왔다”고 말했다. 전날 오후 방문한 서울시립대 정문 인근의 한 카페에는 삼삼오오 모여 온라인 강의를 듣는 학생들로 빈 틈이 없었다.

한편 실습 수업이 반드시 필요한 이공계와 의대생들은 굉장히 난감한 분위기다. 서울의 한 의대에 다니는 이모씨는 “온라인 강의 때문에 실습 기간이 줄어드니까 실습 일정이 더 빡빡해질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강보현 김지애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