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 안 보인다”…코스피 1500선 붕괴, ‘달러 전쟁’으로 환율 폭등

입력 2020-03-19 17:28 수정 2020-03-19 18:23
코스피지수가 전 거래일(1591.20)보다 133.56포인트(8.39%) 내린 1457.64에 마감한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국 금융시장이 그야말로 ‘대위기’를 겪고 있다. 19일 코스피지수는 8.4% 폭락해 1500선이 붕괴됐고, 환율은 40.0원 치솟아 11년 만에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얼어붙은 투자 심리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더욱이 전세계 금융권에서 ‘믿을 것은 달러’ 밖에 없다는 사고가 널리 퍼지면서 국내시장에서의 외화 유출에 따른 금융불안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날 코스피는 133.56포인트(8.39%) 내린 1457.64로 마감했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 1500선 이하로 주저앉은 건 2009년 7월 23일(1496.49) 이후 약 10년 8개월만이다. 개장 직후 코스피는 2.19% 상승 출발했으나, 외국인(6166억원)과 기관(2900억원)이 순매도를 이어가면서 주가가 급격하게 하락세로 전환됐다.

코스닥지수도 56.79포인트(11.71%) 폭락해 428.35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선 장중 8% 이상 급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돼 ‘서킷브레이커(일시적 거래 중단)’가 발동됐다. 두 시장에서 같은날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건 지난 13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이른바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전날 대비 9.62% 급등한 68.84로 마감됐다. VKOSPI는 장중 한때 71.75까지 뛰어올라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1월 24일(장중 고가 74.08) 이후 11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코스피가 연일 장중 급락하면서 시장 투자자들이 느끼는 ‘패닉 상태’가 반영된 것이다.

국내 증시는 아시아 주요국인 일본(-1.04%), 중국(-0.98%), 홍콩(-2.33%) 등과 비교해도 낙폭이 유독 컸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비중이 큰 것, 외부 경제에 대해 의존도가 높은 점 등도 셀코리아의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거래소는 “전날 글로벌 증시 폭락과 경기침체 우려 확산, 원화 가치 급락 등으로 외국인 매도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전날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6.3% 떨어진 19898.92로 마감하며 3년 만에 ‘2만 고지’가 무너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 관광객 발길이 뜸해진 19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를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이 40.0원 폭등한 1285.7원까지 치솟으면서 사설 환전소가 밀집한 이곳엔 달러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양민철 기자

서울 외환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40.0원이나 오르며(원화 약세) 1285.7원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이 1280원 이상으로 뛴 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던 2009년 7월 14일(1293.0원) 이후 처음이다. 이승훈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주가 급락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불안이 금융위기 초입과 같은 ‘거래 상대방 위험’을 유발하며 달러화 수요를 급팽창시켰다”고 말했다.

이는 코로나 패닉에 빠진 글로벌 금융시장이 일제히 ‘달러 확보’ 전쟁을 벌이면서 촉발된 사태라는 분석이 나온다. 블락클리 어드바이저 그룹의 최고투자책임자인 피터 부크바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현금 외엔 숨을 곳이 없다”고 말했다.

달러 강세는 원화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 인덱스는 이날 101.54 수준까지 치솟으며 100선을 돌파했다. 2016년 전 고점(102)을 코앞에 둔 상황이다.

코로나 금융위기 속에서 가격 상승을 이어가던 채권마저 하락세로 전환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0.994%에서 1.259% 수준까지 올랐다(채권값 하락). 채권과 함께 안전 자산으로 꼽히던 금도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거래되는 금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3.1% 더 떨어지며 온스당 1493달러까지 주저앉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됐던 이달 초 온스당 1700달러 선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13% 가량 떨어졌다.

이러한 금융 불안 사태는 ‘달러 품귀’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직 시중은행 환전 여건에는 문제가 없지만 사설 환전소 등 ‘길거리 경제’에서 불안 심리가 퍼졌다. 19일 오후 명동에 있는 대부분의 사설 환전소에서는 달러를 구할 수 없었다. 원·달러 환율이 급상승하면서 달러를 사려는 사람은 늘었는데 파는 고객은 끊긴 탓이다. 한 환전소 상인은 “최근 환율이 비정상이라 달러 파는 사람들이 아예 오질 않는다. 이런 게 금융위기 전조(前兆)”라고 말했다.

조민아 양민철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