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법 전원합의체까지 바꾼 코로나, 대법관 13명 전원 마스크

입력 2020-03-19 17:18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세는 사법부 내 최고의결기구인 대법원 전원합의체 풍경까지 바꿔 놓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인은 19일 마스크를 착용한 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석했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전원합의체부터 모두 마스크를 쓰고 회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식 기록을 따질 수야 없겠지만, 마스크를 쓴 채 진행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의는 사상 처음일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대법원은 이전부터 각급 법원의 휴정을 권고하고 대법관의 퇴임식마저 생략하는 등 코로나19 대응에 동참해 왔다. 수도권 병원장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채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회의를 한 일이 드러나며 위기감이 커지기도 한 상황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이후 으레 있던 대법관들의 만찬 행사도 예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원합의체 회의가 열리는 매월 셋째주 목요일 저녁이면 대법관들의 관용차량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됐었다. 하지만 이날은 애초부터 행사가 예정되지 않았다.

한편으론 단순한 만찬이지만, 생략이 이례적이라면 이례적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날의 만찬은 격론을 주고받은 대법관들의 ‘뒤풀이’ 성격도 있다고 한다. 대법원장이 재판장인 전원합의체에는 애초에 각 소부에서 의견 일치가 되지 않은 사안들이 올라오는데, 경우에 따라 한 쟁점을 두고 4~5차례 회의를 거치기도 한다. 워낙 첨예한 쟁점을 두고 설득이 이뤄지는 만큼, 견해가 다르면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는 것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아는 이들의 말이다.

마스크를 쓴 대법관들이 진행한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의에서는 일명 ‘NLL(서해북방한계선) 사건’으로 불리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사건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졌다.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를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상고심 과정이다. 이들이 삭제했다는 회의록 초본을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있는지 등이 쟁점이다.

국내 패션 브랜드가 출시한 일명 ‘눈알 가방’이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의 ‘버킨백’ 형태를 도용했는지의 문제도 이날 전원합의체에서 논의됐다. 2심까지는 “유사성이 인정된다는 사실만으로 거래 질서를 해쳤다고 보기 힘들다”는 판단이 이뤄졌다. 이날 전원합의체는 조희대 전 대법관의 후임인 노태악 신임 대법관의 전원합의체 ‘데뷔전’이기도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앞으로도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사건 등 한국 사회의 첨예한 쟁점들이 계속 논의될 예정이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