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증상이 의심되거나 체온이 39도를 넘는데도 막무가내로 입국하는 자국 국민들 때문에 중국 정부가 골치를 앓고 있다.
중국 본토 내의 코로나19 전파는 거의 잡혔는데, 해외에서 확진자가 계속 유입되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 될 수 있는 데다 항공기 내 집단 감염 우려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베이징시 보건당국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해외에 있는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는 불필요한 이동을 피하고 본토 입국이나 다른 나라 여행 계획을 중단해달라고 당부했다.
팡싱훠 베이징 질병예방통제센터 부주임은 “여행 과정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될 우려가 있다”며 “꼭 여행을 해야 한다면 환승 시 감염 위험을 피하기 위해 직항을 이용하고 마스크나 세정제 등을 꼭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팡 부주임은 베이징 내 해외 유입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을 분석한 결과 에티하드항공의 EY888 베이징~나고야, 아에로플로트 러시아항공의 SU204 모스크바~베이징, 에미레이트 항공의 EK306 두바이~베이징, 에어차이나의 CA846 바르셀로나~베이징 등 4개의 항공편이 감염 위험이 높다며 편명까지 공개했다.
베이징시는 지난 16일부터 해외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집중관찰 장소로 이송해 14일간 격리하며 70세 이상 노인이나 14세 이하 미성년자, 임산부, 기저질환자 등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자가 격리키로 했다. 단독 거주지가 있고 동거인이 없는 사람은 자가격리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한 예외 조치도 없앴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7일까지 해외에서 유입된 코로나19 확진자가 155건이었고 18일에도 전국에서 34건의 해외 유입 확진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이날 해외에서 유입된 확진자 외에 본토 내에서는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특히 해외에서 들어온 확진자들 상당수는 자신이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스스로 의심증세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귀국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신경보에 따르면 쓰촨성 출신으로 영국에서 유학중인 황모(22·여)씨는 지난 6일 두통과 인후통이 시작돼 10일 병원을 찾아 진찰을 받고 처방에 따라 인후스프레이를 샀다고 보건당국 조사에서 진술했다.
이어 14일에는 마른 기침까지 나왔으나 15일 항공편을 이용해 런던에서 모스크바로 가 환승한 뒤 베이징에 도착해 바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영국 맨체스터대학에서 유학 중인 시에모(27·여)씨는 지난 2일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나자 스스로 체온을 측정했으나 36.2도가 나와 진찰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5일에는 코막힘 증상 등도 나타났으나 지난 15일 런던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베이징으로 귀국한 뒤 인후통이 있다고 신고해 확진 판정이 내려졌다. 의심 증세가 2주 가까이 진행됐는데도 항공기 탑승을 한 셈이다.
중국 기업의 이탈리아 지사에서 근무하는 차이모(40)씨는 지난 7일 발열 증상으로 체온이 39.5도까지 올라갔으나 해열제를 먹자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12일에 다시 열이 나 체온이 39.4도까지 올라갔고 기침, 가래 증상도 있었으나 열차를 타고 로마에 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어 13일 해열제를 먹고 항공편을 이용해 베이징에 도착한 뒤 검사를 하자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와 확진자로 분류됐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일하는 천모(23·여)씨는 지난 10일 로마에서 출발해 모스크바에서 환승한 뒤 11일 베이징에 도착했고 입국시 체온이 39도였다. 그는 15일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
앞서 베이징 공안국은 지난 7일 발열과 마른기침 등 코로나19 증세가 있었음에도 비행기를 타기 전에 해열제를 먹고, 입국 시 건강상태 카드에 사실을 기재하지 않은 혐의로 이탈리아에서 입국한 4명을 입건하기도 했다.
홍콩도 해외에서 역유입되는 코로나19 환자로 인해 비상이 걸렸다.
전날 홍콩 내에서는 25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누적 확진자 수가 총 192명으로 늘었다. 홍콩의 일일 확진자 수로는 최대규모다.
특히 25명의 신규 확진자 중 3명을 제외한 22명은 최근 외국을 방문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각국과 일본, 태국 등을 방문했다.
신규 확진자 중에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서 일하는 24세 여성 프리랜서 기자도 있었다.
홍콩 정부는 이날 0시부터 해외에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14일 자가 격리를 명령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