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피하랴, 항공사 구하랴…이란 교민들 험난한 귀국길

입력 2020-03-19 14:09

이란에 거주하던 우리 국민과 가족 등 80명을 태운 아시아나항공 전세기가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당초 우리 정부는 이란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지난주에 전세기를 띄우려 했으나 일주일 남짓 지체됐다. 우리 국적기를 곧바로 이란으로 보내면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에 저촉될 수 있어 현지 항공사를 섭외해 경유지를 거치게 하는 등 난제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외교부에 따르면 우리 국민 74명과 이들의 이란 국적 가족 등 승객 80명이 탑승한 아시아나항공 전세기는 한국시간으로 이날 오전 8시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출발해 한국으로 향했다. 전세기는 약 8시간30분 만인 오후 4시30분쯤 인천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다.

이란은 미국 행정부 차원의 강도 높은 제재를 받는 국가여서 전세기 운항에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 국적기가 수도 테헤란으로 직항하면 미국 제재 위반 소지가 있어 제3국인 UAE 두바이를 경유하게 됐다. 테헤란에서 두바이까지는 이란 항공사 여객기를 이용했다. 우리 정부가 이란 국적기를 직접 임차하는 것도 제재 위반이어서 교민 각자가 자비로 항공권을 구매하는 방식이 동원됐다.

이란 항공사가 한 차례 바뀌는 일도 있었다. 교민을 두바이까지 실어 나르기로 했던 현지 항공사가 계약 직전에 일방적으로 파기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란 내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인명 피해가 급증하자 항공사 측이 승객 중 감염자가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난색을 표시했다고 한다. 결국 다른 현지 항공사를 새로 수배하면서 전세기 운항이 당초 예상했던 시점보다 일주일 정도 늦어지게 됐다.

경유지인 두바이에서도 현지 보건 당국의 우려를 사지 않도록 공을 들였다. 이란 항공기가 두바이에 착륙한 후 우리 교민이 공항 내 다른 승객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신속히 전세기에 옮겨 타도록 조치했다. 승객들은 이란 항공기에서 곧바로 활주로 위에 내린 뒤 인근에 대기 중이던 전세기까지 도보로 이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내에서 의심 증상이 발생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검역관과 의료진도 탑승했다.

교민들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직후 성남 코이카(KOICA) 연수센터로 옮겨져 코로나19 진단을 받을 예정이다. 양성 판정자는 의료시설로 이송되며 음성인 경우에는 14일 동안 자가 격리토록 한다. 우리 정부는 이란 내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중국 우한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일괄적인 시설 격리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이번 전세기 운항으로 이란에는 우리 교민이 100명 안팎이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한 교민과 일본 크루즈선 탑승객을 각각 전세기와 대통령 전용기로 데려온 바 있다. 특정 국가 전체 교민을 대상으로 전세기를 운영한 것은 이번 이란 사례가 처음이다. 이탈리아와 필리핀, 페루 등지에서도 국경 통제 등으로 우리 국민이 고립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으나 정부는 아직 추가 전세기 투입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현지 한인회가 우리 항공사와 직접 접촉해 전세기 운항을 추진 중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