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가 위축되면서 봄 성수기를 맞은 중고차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생계에 타격을 입은 일부 중고차 딜러들은 급감한 수입을 만회하기 위해 ‘투잡’까지 뛰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장안평 중고차 시장을 찾았다. 이곳은 1979년 11월 국내 첫 중고차 시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개장한 뒤 현재까지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시장에 들어서자 곳곳에 마스크를 낀 채 호객 행위를 하는 딜러들을 볼 수 있었다. 날씨가 풀리는 봄이 되면 중고차를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곳이지만, 이날 차를 찾는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곳 딜러들은 대부분 20~30년차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런 탓에 시장에 나와 마냥 시간을 때우는 날이 늘었다고 한다. 딜러들은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거나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30년차 딜러인 윤모(59)씨는 “지난달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면서 극소수만 시장을 찾는다. 3월부터 6월까지 성수기인데 차를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다”며 “오늘도 손님이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장사를 잘하는 매매상사들은 현상 유지를 해왔는데, 지금은 전부 다 적자”라고 덧붙였다.
중고차 시장이 한 달 이상 움츠러들면서 딜러들도 점점 지쳐가고 있다. 평소엔 호객 행위를 하는 딜러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김모(64)씨는 “장사가 안 돼 다들 의욕이 떨어졌다. 우린 개인사업자라서 특별히 대책도 없고, 혼자서 끙끙 앓을 뿐”이라며 “장안평 40년 역사에 이런 적이 있었나 싶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고차 시장에는 당장 차가 필요한 사람들의 발길만 이어지고 있다. 주로 중고 트럭 또는 승합차를 구매하려는 자영업자나 차가 너무 노후해 바꾸려는 사람들이다.
성중기 서울장안평자동차매매사업조합 이사장은 “시장을 찾는 고객은 평소보다 40%가량 줄었고, 판매량은 60%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수요가 줄다 보니 자연스레 중고차 시세도 지난달보다 떨어어졌다”고 설명했다.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조합 측은 딜러들에게 마스크 착용, 사무실 및 차량 실내 소독 등을 철저히 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성 이사장은 “4월 중 시장 재개발을 위한 조합이 설립되는데, 그 전에 코로나19 사태가 진전되고 끝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 업계의 또 다른 대표시장인 수원중고차매매단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매단지를 찾는 고객은 지난달부터 40%쯤 줄었고, 문의전화는 60% 수준으로 떨어졌다. 차가 팔리지 않으니 아예 출근을 하지 않는 딜러들도 있다고 한다.
5년차 딜러 장모(31)씨는 “보통 1억원쯤 하는 수입차가 중고로 6000만원선에서 거래됐는데, 지금은 값이 800만원이나 떨어졌다”며 “차를 매입하는 딜러들은 매입가가 있어 가격을 쉽게 내리지도 못한다. 차가 한두 푼도 아닌데, 많이 매입해놓고 안 팔리니까 점점 빚만 쌓인다”고 토로했다.
7년차 딜러 이모(37)씨는 “코로나19 전에는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지금은 매출이 떨어지니 생계유지도 쉽지 않아 투잡을 뛸지 고민하고 있다”며 “이미 수원 쪽엔 꽤 많은 딜러들이 투잡을 하고 있다. 주로 운전과 관련된 배달대행 일들을 많이 한다”고 털어놨다.
글·사진=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