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재정 적자가 올라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방식에 대해서는 현금 지급보다 감세의 경제적 효과가 더 클 것이란 주장을 내놨다. 다만 감세의 대상은 전기세·수도세·집세 등 매달 내야 하는 세금으로 한정했다.
장 교수는 1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모든 국민에게 현금 1000달러(한화 약 120만원)를 지급한 미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돈이 있어도 쓸 수 없다. 한국처럼 택배가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기본 생활에 필요한 그런 비용들, 예를 들어 집세, 전기세, 수도세를 도와줘야 한다. 그건 어차피 나가야 하는 돈이니까”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한국도 현금 지급보다 감세 정책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인터넷 쇼핑이나 배달이 발달해서 (현금 지급이) 다른 나라에 비하면 조금 더 효과가 있기는 할 것 같다”면서도 “사람들이 어디 가서 뭘 먹고 돈을 쓸 환경이 안 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 마련도 촉구했다. 그는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자영업자가 매우 많다. 자영업자 대책이 굉장히 시급하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5.1%다. OECD 회원국 중 5위였다. 반면 그해 유럽 국가들의 자영업자 비율은 10% 중반이었다. 미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6.3%였다.
장 교수는 “기업들이 사정이 안 좋아서 해고해야 할 인원을 데리고 있으면, 임금의 상당 부분을 정부에서 보조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장 교수는 기획재정부가 재난 기본소득 도입을 반대하며 내세운 근거인 ‘재원 마련의 어려움’을 비판했다. 그는 “재정 관료들께서 재정 건전성에 관한 아주 지나친 강박 관념이 있다. 한국이 국가채무비율이 40% 좀 넘는다. 유럽 5~6개 나라 빼고는 세계에서 제일 낮다”며 “오죽하면 재정적자 싫어하는 OECD도 ‘한국은 재정 정책을 통해 돈을 좀 더 써도 된다’는 얘기를 맨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상황이 준전시다. 영국이나 미국이 2차 세계 대전 때 ‘재정 적자 나니까 적당히 싸우자’고 했으면 세상이 어떻게 됐겠나”라며 “재정 적자 좀 올라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2008년 국제 금융 위기를 잘못 처리해서 문제가 더 커졌다. 그때 제도 개혁을 제대로 안 하고 돈만 풀어서 문제를 봉합했다. 돈을 막 푸는데 금융 기관에만 가고 실물 경제에는 잘 돌아오지 않았다”며 “옛날처럼 돈 풀어서 해결이 안 된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이나 2008년 금융 위기 때보다 이미 더 심각하게 가고 있다. 유례없이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코스피 추락도 예상했다. 그는 “아직 바닥이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에서 이자율을 거의 제로로 내린다, 몇조 달러를 푼다고 해도 2시간 지나면 주식이 다시 떨어지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일부 사람들이나 경제학자들은 3개월 지나면 괜찮지 않겠냐는데 저는 그렇게 안 본다. V자로 회복이 된다고 할지라도 미국이나 영국에서 병이 잡히려면 연말까지는 가야 한다”라며 “부품이 없어서 독일에서 자동차 공장 휴무하고, 중국에서 병이 나서 뉴욕 금융 시장이 붕괴하고 있다. 세계화는 진행되었는데 대응책은 공조하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하니까 문제가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앞서 코스피지수는 18일 4.86% 급락하며 1591.20까지 주저앉았다. 주가 반등을 지탱할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1600선마저 무너지며 10년 전 지수로 돌아갔다. 원·달러 환율도 1245.7원으로 오르며 10년 만에 원화 가치 최저 기록을 갈아치웠다. 각국 중앙은행의 ‘제로(0) 금리’ 선언도, 1조 달러(약 1200조원) 넘는 재정정책 발표도 시장의 공포를 잠재우지 못했다.
박준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