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열이 난다, 설마… 사실 저희 괜찮지 않아요”

입력 2020-03-18 19:40 수정 2020-03-18 21:34
오성훈 간호사가 근무 투입 전 방호복과 마스크, 고글로 완전무장했다. 일이 끝나고 병동을 나오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마스크와 고글 자국도 얼굴에 선명하다. 이하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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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코로나 병동 의료 자원봉사 지원서를 쓰고 3일 만에 청도 대남병원으로 향했다. 결혼한 지 5개월 된 아내를 혼자 두고 떠나는 길은 쉽지 않았다. 바이러스, 정신질환, 코호트 격리…. 두려운 공간에서의 일주일은 숨 막히게 돌아갔다. 환자의 돌발행동으로 주삿바늘에 찔릴 뻔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곳 모두가 같은 사람이었다. 환자에 대한 측은함이 있었고 노고는 의료진을 향한 고마움으로 되돌아왔다. “위험하지만 그래도 나는 가야 한다”던 오성훈(27) 간호사의 결심은 그렇게 보답 받았다.

청도 대남병원에서의 임무를 완수한 오 간호사에게 또 다른 근무지가 정해졌다. 그 전에 코로나 관련 검사를 해야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었다. 오 간호사는 “진지하게 무서웠다. 모든 의료진이 짠한 이유는 늘 불안감에 싸여 있다는 거다. 속으로 ‘진짜 설마, 설마’를 수없이 중얼대며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그렇게 받아든 결과는 ‘음성’이었다. 오 간호사는 짐을 쌌다. 그리고 경북 안동의료원으로 떠났다.

오 간호사는 청도 대남병원 근무 후 코로나 관련 검사를 받았다. 그는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일이 끝나면 우린 냉장고 앞으로 간다”

오 간호사가 안동의료원에 도착한 건 지난 6일이다. 근무지가 달라졌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이전처럼 정신질환을 앓는 확진자들의 소동은 없었지만 또 다른 무리한 부탁이 등장했다. “집에서 쓰던 물건을 택배로 보냈거든요. 그것 좀 받아주실래요?” “제가 그 환자 보호자인데 한 번만 보고 갈게요. 아니면 이거라도 전달해줘요.” 격리 생활을 답답해하는 일부 환자들과 무턱대고 찾아오는 보호자들을 상대하는 일은 버거웠다. 그럴 때마다 “안 됩니다. 놔두고 가셔도 저희는 다 버려야 해요”라며 단호하게 대처하지만, 오 간호사는 “정말 힘 빠지는 순간”이라고 토로했다.

2주째에 들어서다 보니 체력 역시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가장 힘든 건 의료용 방호복과 마스크, 고글 등을 온몸에 걸친 채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거였다. ‘어떤 상상을 하면 이해가 쉬울까요’라는 질문에 오 간호사는 “엄청 뜨거운 사우나 안인데 얼굴은 가려져 있다. 땀이 흐르는데 닦을 순 없다. 그 상황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최악의 상황은 이렇다. 완전무장을 한 뒤 업무를 시작하면 땀이 흐른다. 절제가 되지 않아 온몸에선 열이 난다. 입과 눈은 N95 마스크와 고글로 막혀있다. 때문에 열기는 오로지 노출된 얼굴 일부로만 향하는데, 빠져나올 구멍이 없어 고글에 습기가 들어차기 시작한다. 저절로 시야가 흐려지고 거기에 땀이 흘러 들어가 눈이 따가워진다. 이 상태로 최소 2시간 동안 환자를 돌봐야 한다.

오 간호사는 “모든 걸 환자에게 맞춰야하기 때문에 에어컨은 틀 수 없고 추운 날에는 오히려 난방 히터를 튼다”며 “일 끝나고 돌아오면 냉장고에 붙어 있거나 얼음물을 얼굴에 대면서 버틴다”고 덧붙였다.

오 간호사와 동료 의료진들은 지난 6일부터 안동 의료원 코로나 병동에 투입됐다.

“괜찮다지만 진짜 괜찮은 건 아니다”

코로나 병동 의료진에게 무엇보다 힘든 건 언제 어떻게든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다. 그걸 오 간호사 역시 느꼈다. 그는 “안동의료원에 온 뒤로 열이 한번 났었다. 37.6도쯤 됐다”고 회상하며 “정말 무서웠다”는 말을 반복했다. 당시 오 간호사는 다행히도 업무 중이 아니었다. 열을 잰 즉시 철저한 자가 격리에 들어갔고 아내가 보내준 영양제와 비타민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니 몸이 가벼워졌다.

그는 “만약에 업무 중 의심 증상이 나타난다면 정말 큰 일이다. 곧장 업무에서 빠져야 하는데 매우 치명적인 상황이 된다”며 “모든 의료진이 걱정하는 건 자신이 바이러스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경우라면 더 그렇다”고 했다.

한번 열이 나고 나니 불안감은 더 심해졌다. 체력 소모보다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현실이 더 힘들다고 오 간호사는 말했다. 그는 “내가 감염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다”며 “다들 어떻게든 최대한 조심하려고 하지만 ‘걸려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다. 괜찮다는 말은 하지만 괜찮지 않다”는 진심을 털어놨다.

“테이프로…” 서너 번씩 지퍼 열린 불량 방호복

그런 의료진이 진짜 필요로 하는 건 뭘까. 오 간호사는 “정말 너무 당연하지만…”이라고 운을 떼며 인력과 보호장비, 그리고 따뜻한 식사를 강조했다. 의료 지원 인력 배치 시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어떤 지역에 얼마만큼의 규모를 투입할지에 대한 수요 조사를 진행한다. 이후 지원자의 근무 경력 등을 고려해 필요한 병원에 배치한다. 오 간호사는 이 과정이 조금 더 원활해지도록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 병동 의료진들이 사용하는 보호 장구들은 아직 부족하다. 오 간호사는 가끔 불량 제품들이 들어와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늘 감염 위험에 노출된 의료진들은 업무 투입 전 보호 장구를 꼼꼼하게 점검한다.

그는 “(인력이) 많은 곳은 많고 적은 곳은 적다. 그러다 보니 힘든 곳은 더 힘들어진다”며 “한번 배치된 인력에 대해서는 관리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다. 열심히 노력해주시는 건 분명히 알지만 의료진들 사이에서는 시스템 미흡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의료진들이 착용하는 보호장비의 공급은 코로나19 사태 초반보다 많이 개선됐다. 그러나 오 간호사는 “가끔 불량제품이 섞여서 들어온다”며 질적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근무 중 3~4번씩 지퍼가 열리는 불량 방호복을 입으신 분들이 계셨다”며 “정말 끔찍한 상황이지만 수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열린 지퍼 틈을 테이프로 붙인 채 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의료진들의 일회용 반창고 사진 역시 고급 장비를 사용한다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짚었다. 오 간호사는 “좋은 고글은 한두 시간씩 써도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10분만 지나도 송곳으로 찌르는 듯이 이마를 찍어 누르는 고글이 대부분”이라며 “국소적인 부분에 통증이 몰려버리기 때문에 두통이 생기고 답답해진다”고 토로했다.

무섭고 힘들다… 그럼에도 쉴 수 없는 이유

청도 대남병원에서부터 안동의료원까지 오 간호사의 지난 2주는 쉽지 않았다. 사실 시작부터가 그랬다. 가족들의 반대에 무거운 마음으로 현장에 도착했고, 몸은 쉴 틈이 없었다. 이 마스크가 벗겨지면, 이 주삿바늘에 찔리면 내가 감염된다는 생각에 눈앞이 아찔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고 무섭다는 말을 내내 되뇌었지만 그래도 움직였다. 요즘에는 없는 시간을 내 언론과의 인터뷰도 하고 있다.

그는 “과거에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라는 고민을 깊이 한 적 있다. 그때 나는 나로서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행사하면서 살고 싶다는 다짐을 세웠다”며 “지금 간호사들을 위한 회사를 세우고 웹툰을 그리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작은 활동인데도 4만명의 구독자가 함께해주시는 걸 보고 이 영향력을 계속 좋은 일에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의료 봉사에 지원한 이유 역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고,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최대한 밤잠을 줄여서 언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런 희망을 한 명에게라도 더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오 간호사가 쓴 '국민에게 드리는 편지'. 그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며 "함께 힘을 모아 사태를 이겨내자"고 당부했다.

가족에게, 국민에게, 그리고 내 환자들에게

오 간호사는 직접 손으로 쓴 편지 한 통을 국민일보에 공개했다. 코로나 병동에서 일한 지 2주째 되던 날 그동안 기록한 일기를 돌아보며 쓴 글이다. 그는 “이번 겨울이 유난히 따뜻했지만 많은 분의 마음은 추웠을 것”이라며 “3월이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꽃이 피며, 경제도 살아나야 하는데 코로나라는 낯선 손님 때문에 사람들 간의 경계가 생기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으니 몸은 거리를 두되 마음만은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고 하지 않나. 봄을 행복하게 누릴 수 있도록 끝까지 희망을 가지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확진자들을 향한 따뜻한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본인이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게 아닌데 스스로를 죄인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며 “의료진으로서 제게 그분들은 정성껏 치료해야 하는 대상이고 저와 같은 국민의 한 명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자괴감에 빠지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행여나 극단적인 생각은 절대 하지 않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오 간호사와 아내. 신혼 5개월 차인 오 간호사는 아내의 든든한 응원이 고된 업무를 이겨내게 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아내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오 간호사는 끝내 울컥하며 목소리를 떨었다. 그는 “제가 힘들까 봐 티를 안 내려고 하는 게 보여 늘 뭉클하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도 오히려 씩씩한 척을 하더라”며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가면 약속했던 여수 여행을 가고 싶고, 사랑한다고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 오성훈 간호사가 쓴 ‘국민에게 드리는 편지’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