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상황 예의주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국제유가가 산유국 간 원유 감산 합의 실패의 영향으로 연일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처럼 석유를 100% 수입하는 국가에 저유가는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어지고 있는 저유가 상황에 정부도, 기업들도 마냥 웃지는 못하고 있다. 왜 그런 걸까.
1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6.1%(1.75달러) 떨어진 26.9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6년 2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도 28.73달러로 4.39%(1.32달러) 내려갔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이날 올해 1분기 WTI는 배럴당 22달러, 브렌트유는 20달러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앞서 이달 초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 무산 이후 WTI는 배럴당 29달러, 브렌트유는 30달러로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2주 만에 전망을 다시 수정했다. 이 은행의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인 제프리 커리는 “코로나19 충격으로 원유 소비량이 하루 800만 배럴 감소했다. 이 같은 원유 수요 감소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9일과 11일, 17일 세 차례에 걸쳐 국제유가 대응반 회의를 열고 저유가에 따른 파급효과와 그 대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는 저유가 상황이 되면 기업으로서도 원재룟값과 운수 비용 등이 줄면서 그만큼 투자할 여력이 많아진다. 가계 역시 일정 부분 소비 여력이 생긴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저유가에 따른 수요 창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18일 “일반적으로 저유가가 되면 거시경제 전반적으로 플러스 요인이 많은데 최근 상황은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수요 감소로 인해 일반적인 저유가 상황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며 “저유가의 혜택이 적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가 유럽과 미국으로까지 확산하면서 수출도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계속되는 수요 감소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이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팀장은 “2008년 당시에도 저유가 상황이 이어졌지만,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한국 역시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로서도 저유가는 상당한 부담이다. 정유사들은 의무적으로 원유 재고를 40일간 비축해야 하는데, 원유 가격이 단기간에 폭락하면 비싸게 사놓은 원유를 싸게 풀어야 해서 그만큼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또 정부가 추진해온 신재생에너지 사업 역시 저유가 상황에서는 탄력을 받기 어렵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계기로 인도네시아나 인도 등과 신재생에너지 협력을 확대해왔다. 하지만 저유가 상황에서도 석유 수요에 큰 변화가 없는 선진국과 달리 개발도상국은 저유가가 장기화하면 석유 수요가 다시 늘어날 수 있다. 이에 따라 개도국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해온 국내 에너지기업들도 일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