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3월을 보내고 있다. 이맘때면 응당 많은 이들의 삶에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고 거리 곳곳에는 활기가 찾아들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 각지에 덮친 지금, 3월은 잃어버린 시간이 된 듯하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다함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이어가고 있다. 누구도 이 지침에 이의를 달지 못할 만큼 중요한 대응 태세로 꼽힌다. 이게 필수불가결한 일이라는 건 자명하다. 어느새 사람들은 휑한 거리에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오가는 발걸음이 뜸해진 번화가에도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평소처럼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면서 청소를 하고 곳곳마다 깨끗한지 점검하다가 드문드문 손님을 맞고 평소같이 문을 닫는다. 그렇게 하루의 삶을 이어가는 게, 오늘을 버티는 힘이 돼주기도 한다. 며칠 동안 굳게 닫힌 이웃 가게들을 보면서 무거운 마음이 들곤 하지만, 불안도 답답함도 꾹 누르고 이 시간을 견디고 있다.
서울의 번화가에서 만난 소상공인들의 하루는 이렇게 그만그만했다. 국민일보는 어려운 나날을 감내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16~17일 서울의 대표적인 번화가 12곳에서 스무명의 소상공인을 만났다. 늘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힘든 적도 없었다는 게 취재에 응한 모두의 공통된 증언이었다.
번화가에도 흥망성쇠는 있기 마련이나 그게 한꺼번에 들이닥칠 줄은 몰랐던 이들. 그들이 들려준, ‘번화가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국민일보가 찾아간 번화가는 서울 여의도, 홍대, 신촌, 이대, 이태원, 후암동, 광화문, 종로, 을지로, 신사동, 논현동, 역삼동 일대다.
회식이 사라진 거리: 광화문, 을지로, 여의도 오피스가
16일 오후 12시. 서울 중구 을지로의 식당가에서 직장인 4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아, 여기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다른 데 가자.” 창 너머로 들여다보니 식당엔 세 테이블 정도가 차 있었다. 기자가 왜 굳이 다른 곳으로 가느냐고 물으니 일행 중 한 명인 김정은(41·여)씨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서로 조심해야 하니까요. 저희 사무실엔 도시락 싸오는 사람도 많은데, 어쩌다보니 이렇게는 나오게 됐어요. 예전엔 뭐 먹을까 취향별로 메뉴를 고민했는데, 요즘은 무조건 ‘사람 적은 식당’에 가자고 해요.” 이 넷은 점심시간이 막 시작됐는데 한 자리도 차지 않은 한 고깃집에 들어섰다. 60대로 보이는 식당 여주인의 얼굴에는 절박한 반가움이 스쳤다.
서울 을지로, 종로, 광화문, 여의도, 역삼동 등으로 대표되는 주요 오피스가의 점심 풍경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이전과는 비할 바가 아니라지만 적어도 우울감이 휘감는 정도는 아니었다.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녔고, 식당가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소상공인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그래도 점심 장사 덕에 버틴다”는 것이었다.
서울 중구 정동에서 만난 60대 식당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원래 예약 위주로 운영이 돼요. 예약 없이 오는 손님들도 받지만, 점심에는 10분이라도 줄을 서야 자리가 나는데 요즘은 예약 자체가 거의 없어요. 월요일에 어느 분이 전화를 합디다. 예약할 수 있냐고요. 그런데 내가 말을 못했어요. 목이 메서. 겨우 가다듬고, 예약이 뭡니까, 손님. 무조건 오십시오. 이랬습니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60대 남성은 이 말을 하면서도 목이 멨다.
소상공인연합회 빅데이터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유동인구는 200만명으로 지난달 9일 930만명에서 78.5%나 급감했다. 유동인구의 급감은 소상공인들에게는 직격탄이 됐다. 오피스가 소상공인들에게 가장 바쁜 시간이었던 저녁은 가장 속 타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오피스 밀집지역 식당가의 저녁은 회식을 하는 이들로 북적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회식 예약이 뚝 끊겼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만난 한 20대 직원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손님이 들고 나던 매장은 손님 수를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가 됐다. 4년 동안 이 식당에서 일했던 직원의 이야기는 이랬다.
“여기는 단골이 많은 곳이거든요. 보세요. 지금도 밖에 사람들이 안 다니잖아요. 단골손님들도 가끔 오시면 여기가 이렇게 조용한 거 처음 본다고 하더라고요. 코로나 전이랑 비교해보면 뭐, 반토막 났죠. 더 적은가? 사장님이 너무 힘드시죠.”
회식 등 단체 예약 위주로 운영되던 광화문의 한 대형 식당은 매출이 10분의 1토막이 났다. 550석 규모로 2개층을 운영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1개층만 쓰고, 그 마저도 만석을 본 지는 오래라고 한다. 이 식당 매니저급 직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렇다.
“이 근처는 회사가 많아서 점심은 그럭저럭 유지되는데 사실 돈은 저녁 장사로 버는 거예요. 점심 장사만으로는 솔직히 인건비도 힘들죠. 오늘 저녁에도 3명 한 팀 예약 들어온 게 전부예요. 1~2월 예약 풀타임으로 차 있었는데, 2월에 줄줄이 취소됐어요. 오늘 저녁은 뭐, 텅텅 비었죠.”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 힘들었던 곳인데 한 층을 비워도 될 만큼 장사가 안 된다는 건 종사자들에게는 어떤 무게로 다가올까. “직원이 우리가 원래 40명 수준이었어요. 지금은 절반이 나갔죠.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인건비 밖에 없다보니까. 종업원들도 손님이 없는데 멀뚱하니 서 있는 것도 눈치 보이고요. 일이 잘되면 힘들어도 즐거워요. 거짓말 같죠? 그런데 흐름을 타면 달라요. 이게 다 내 돈 아니어도 신나거든요. 와, 장사 잘되네, 하고. 그런데 죽을 쑤고 있으니 종업원들도 눈치 보이죠.”
이 집은 배달의민족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얘기를 물으니 매니저는 쑥스러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시작한 거 맞아요. 그런데 이것도 잘 안돼요. 장사가 너무 안 되니까 직원들이 열심히 아이디어 내서 했는데, 점심에만 한 건데도 안 되네요.”
떠밀려 걷던 길이 편안해졌지만, 반갑지 않다 : 홍대 일대
저녁 시간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는 떠밀려 올라가던 곳이었다. 16일 오후 8시,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 섰다. 이날 취재진이 다녔던 어떤 곳보다 사람이 많은 느낌이었지만 9번 출구를 오르내리는 이들은 고작 10명 안팎이었다. 낯선 모습이었다.
홍대 놀이터 앞에선 한 화장품 가게 직원이 매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문 닫는 시간은 22시라고 적혀있었지만 이 직원은 오후 8시가 조금 넘자 문을 걸어 잠그고 떠났다. 홍대의 클럽마다 입구에 ‘19일부터 정상영업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붙여 놨다. 옷가게는 대부분 일찌감치 문을 닫은 듯했다.
오후 9시20분쯤 곱창거리로 들어섰다. 평일에도 길게 늘어진 대기 줄로 뒤엉켜있던 거리는 한산했다. 27년 된 곱창집에서 일하는 김모씨(62·여)는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하루 매출이 적어도 300만원, 많게는 700만원씩은 나왔어요. 그런데 요새는 70만원 찍는 날도 있어요. 여기 저녁엔 3시간 동안 줄 엄청 서있는데 지금은 그냥 텅텅 비었지. 외국인 손님이 많았는데 하나도 안 오니까. 한국 사람들은 여기 중국인 많이 다닌다고 안 오고. 그냥 다 안와요. 바빠서 뛰어다녔던 시간인데 이렇게 얘기하고 있잖아요.”
또 다른 곱창집에서는 심난한 표정으로 “여기 다 장사 안돼요. 뭘 물어봐요”하면서 바깥으로 내몰았다.
이날 오후 찾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과 마포구 이대입구 주변은 개강이 온라인으로 대체된 대학가의 분위기가 확연히 느껴졌다. 길거리 닭강정집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은 “마지못해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여기서 이 일 한 지는 5년 정도 됐어요. 단골도 많고 유동인구도 많고, 닭 튀기기 바빴지. 지금은 매출이 10만원도 안 나와요. 밤 12시까지 하다가 요새는 10시 반이면 닫아요. 하나도 못 파는 날도 있고. 이 주변 노점상들 다 죽어나요. 저쪽 한 군데는 보름 전부터 문을 안 열더라고.”
닭강정집 사장님도 매출 ‘0원’을 찍은 날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그래도 다음날이면 다시 새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뾰족한 수가 없는 요즘, 하던 일을 이어가야만 했다. “여기 보면 한참 문 닫았다가 다시 나오기도 하더라고. 혹시나 하고 나왔다가 하나도 안 팔리면 열 받아서 다시 안 나오고 뭐 그러는 것 같습디다.”
오후 5시쯤 신촌역 근처 한 화장품 매장에 들어갔다. 코로나19 이후 매출은 반 이상 줄었고 찾아오는 손님은 30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아르바이트생은 일을 그만둬야 했다. 엄마와 둘이 일 한다는 30대 여사장은 “손님들이 급한 거 아니면 굳이 사러 오지 않는 것 같다”며 “매출은 안 나오는데 장사를 안 할 수도 없으니 엄마랑 둘이 하면서 거의 쉬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돈까스집을 운영하는 강민정씨(49·여)는 주말 장사가 너무 안 된다고 했다. “2월부터 5월까지가 피크죠. 주말에 장사가 꽤 됐는데 사람이 너무 없어요. 개학 전에 학생들이 방 계약 때문에 많이 오고가는데 지금 학생들이 안 나오니까. 신촌은 주말마다 무슨 행사를 하는데, 요새 그게 싹 사라져서 주말 장사가 힘들어졌어요. 30만원 벌면 인건비는 나왔다고 좋아한다니까요.”
이대 앞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는 한 여성(62)은 “메르스를 겪어봐서 실망도 없긴 한데 타격은 메르스 때보다 더 크다”며 “이 주변 옷가게들은 일주일 내내 개시도 못한 곳이 많아서 아예 안나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액세서리 가게 사장님은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래도 요새 방역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몇 달 뒤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은 있어요. 메르스 때는 아예 희망이 없었거든.”
높은 임대료가 겁나는 사람들: 강남역과 가로수길
취재진이 찾은 번화가 가운데 가장 활기가 느껴졌던 곳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역삼동 등 강남역 일대였다. 17일 오후 강남역 근처의 교보문고와 알라딘 중고서점엔 사람들이 적잖이 보였다. 스타벅스에 사람이 몰리는 것처럼 서점도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 된 듯 했다.
강남역도 ‘저녁 장사’가 더 중요한 곳이다. 오후 3시쯤 본격적인 개시 전인데도 일찌감치 문을 열고 있는 한 선술집에 들어갔다. 이 술집을 운영하는 이모(73·여)씨는 임대료 걱정부터 털어놨다.
“이 근방 임대료는 비싼 덴 한 달에 4000만원씩도 해요. 임대료도 못 내지, 요즘 같아선. 그런데 임대료 내려준다는 곳도 없어. 여기는 없더라고요. 매출이 반으로 뚝 떨어졌지.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하는데 큰일이야. 하루에 100만원도 못 벌어서 임대료 어떻게 내냐고요. 우리 가겐 낮에 밥장사를 하는데, 그나마 여기가 제일 잘 된다고 하니 말 다 했지.”
강남역에서 한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변모씨(67·여)는 지인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여줬다. 하소연과 함께 텅 빈 매장 사진이 눈에 띄었다. “지난주에 저녁 7시반에도, 밤 9시에도 손님이 하나도 없었어요. 기가 막혀서 친구들한테 하소연했지. 3월에 단체 예약은 다 취소됐고. 이럴 줄 모르고 직원을 채용했는데, 아무래도 더 일 못하겠다고 말하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
변씨는 손님들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사람들이 ‘주말인데 강남역에 사람 이렇게 없긴 처음이다’라고 하더라고요. 원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짜증나던 곳이었는데. 학원 강사 하는 한 친구는 일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하고.”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일대는 신촌이나 이대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화장품 매장, 옷가게, 카페 등에 사람이 한 명도 없거나 한두명 정도 있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붐비는 곳은 애플스토어였다.
한 옷가게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외국인 손님들이 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매출이 평소보다 5분의 1도 안 돼요. 옆에 되게 장사 잘 되던 신발가게도 너무 힘들다더라고요. 하나도 못 파는 날도 많다고. 여기는 내국인보다 외국인 매출이 큰 동넨데, 지금 아예 안 오니까. 코로나 이후로 내내 적자예요. 임대료 내기도 힘든데 어떡하면 좋아요.”
을씨년스러워진 글로벌 타운 : 이태원과 경리단길
16일 오후 10시쯤 이태원은 텅 빈 느낌이었다. 발 디딜 틈 없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오가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음식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술집과 바에만 사람이 조금씩 있는 정도였다. 외국인들과 젊은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글로벌 타운’ 이태원은 지금까지 없었던 불황을 맞고 있다. 텅 빈 거리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이태원의 한 바에서 만난 유모씨(23)는 이태원을 잘 아는데 이런 적은 없었단다. 유씨의 이야기다. “여기 월세가 750만원인데 그나마 건물주가 조금 깎아줘서 이정도예요. 오늘 오후 3시에 문 열었는데 두 팀 왔어요. 평일에 15~20팀은 들어오는데 요즘은 하루 종일 한 팀만 있는 경우도 많아요. 이 근처 클럽들이 다 문을 닫으면서 유동인구 자체가 확 줄었죠. 외국인들 안 오는 것도 크고요.”
이날 취재진이 이태원에서 목격한 외국인은 5명도 채 되지 않았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차모(41)씨는 “코로나가 팬데믹 상황까지 왔으니 당분간 이태원 쪽은 계속 힘들 것 같다”며 “게스트 하우스도 개점휴업이고, 음식점들이 비싼 월세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