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20 도쿄올림픽 예선 완주 시점을 오는 6월 30일로 지정하자 각국 체육계 인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연기를 거듭하는 올림픽 예선의 진행과 책임을 종목별 국제단체와 선수들에게 떠넘겼다는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부터 들고 일어나 “무책임한 태도”라며 IOC를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IOC가 시간을 끌 목적으로 저항의 한계선, 이른바 ‘데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IOC는 33개 종목 국제단체에 이어 206개 회원국 국가올림픽위원회(NOC)와 연쇄 컨퍼런스 콜(화상 회의)을 진행해 기존의 강행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캐나다 아이스하키의 영웅으로 현직 IOC 위원인 헤일리 위켄하이저는 18일(한국시간) 트위터에 “지금의 위기는 올림픽보다 더 중대한 사안이다. 앞으로 3개월은커녕 24시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IOC의 올림픽 강행 의사는 몰이해와 무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위켄하이저는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대회부터 2014년 러시아 소치 대회까지 캐나다 여자아이스하키대표팀의 동계올림픽 4연패를 이끈 금메달리스트 출신 IOC 위원이다. 2014년에 IOC 위원으로 선출됐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 장대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인 그리스의 카테리나 스테파니디는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됐지만, IOC는 같은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이 개최되길 원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플랜 B는 무엇인가”라며 IOC에 대안을 요구했다. 스테파니디는 “IOC가 선수의 건강, 위생을 위험으로 빠뜨리길 원하는가”라며 현역 선수들 사이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높아진 우려를 강조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최근에야 맞은 유럽 체육계 인사들의 반발도 거세다. 알레한드로 블랑코 스페인 올림픽위원장은 이날 자국 위원회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내고 “스페인 선수들은 훈련조차 못하고 있다. 다른 국가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올림픽이 예정대로 4개월 뒤인 7월 24일에 개막하면, 경기의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IOC의 입장은 여전히 강경하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지난 17일 화상 회의로 마주한 종목별 국제단체 대표자들과 “6월 30일까지 올림픽 예선을 완료한다”고 결의했다. 올림픽 28개 정식종목, 5개 시범종목을 관장하는 국제단체의 수장들을 긴급하게 소집한 이 회의는 완주조차 장담할 수 없는 올림픽 예선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소통의 장이 아닌, IOC의 입장과 계획을 통보받고 결의를 이끌어내는 자리에 가까웠다.
한국 대표자로 유일하게 이 회의에 참석한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는 “바흐 위원장이 전례 없는 위기에도 강한 확신을 갖고 올림픽의 정상적인 개최를 강조했다”며 “모든 종목을 통틀어 57%의 본선 출전자가 선발됐다. IOC와 종목별 국제단체들은 6월 30일까지 예선을 완주하면 본선 준비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복싱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유럽·미주의 올림픽 예선을 지난 17일에 중단하고, 남은 본선 진출권을 5~6월 중으로 배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배구·체조의 경우 본선의 리허설 격으로 다음달 중 도쿄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테스트 이벤트를 취소했다. 상대적으로 늦게 본선 진출을 확정한 선수의 체력과 컨디션이 메달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점도 과제로 남아 있다. 6월 30일은 올림픽 개막일까지 불과 25일 앞둔 시점이다.
IOC는 이날 회원국 NOC 대표자들과의 컨퍼런스 콜을 시작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NOC 대표자들과 회의는 19일로 예정돼 있다. IOC는 연쇄 회의를 앞둔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때가 아니다. 올림픽 개막을 4개월 이상 앞둔 지금은 어떤 추측도 역효과만 낳는다”고 주장했다. 이를 놓고 체육계 일각에서 “종목별 국제단체와 회원국들의 저항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IOC, 일본 정부와 함께 강행 기조를 유지했던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는 이미 연기 쪽으로 중의가 모이고 있다. 일본 스포츠호치는 이날 “조직위 이사진이 1년 연기를 제안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다카하시 하루유키 조직위 집행위원은 2년 연기 방안을 내놨다. 기간만 다를 뿐 연기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IOC에 제안하는 움직임이 조직위 안에서 힘을 얻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