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코로나로 가정돌봄 중이던 발달장애학생 모자 숨진채 발견

입력 2020-03-18 17:21

제주에서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학생과 엄마가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발견 전날 엄마가 쓰고 나간 것으로 보이는 유서에는 자폐 아들의 돌봄에 대한 어려움과 아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담겨있던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긴급돌봄을 신청하고도 코로나 감염을 우려해 외동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엄마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양육 상황을 비관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장애학생에 대한 실효성있는 돌봄 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18일 경찰 등에 따르면 17일 오후 3시45분쯤 서귀포시 남원읍의 한 공동묘지 인근에 주차된 차량에서 엄마 A씨(48)와 아들 B군(18)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하루전인 16일 유서를 남긴 채 B군과 함께 제주시 소재의 집을 나섰다.

같은 날 A씨의 남편(49)이 유서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이들 모자의 행방을 찾았다.

A씨가 죽기 전 남긴 것으로 보이는 유서에는 ‘삶이 힘들다’ ‘아들이 걱정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당국에 따르면 B군은 제주시내의 한 특수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A씨는 코로나 사태로 개학이 연기됨에 따라 학교에 긴급돌봄을 신청했으나,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돌봐온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 관계자는 “B군이 출석하지 않아 어머니에게 연락해보니 코로나 감염이 걱정돼 보내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장애자녀를 가정에서 돌보는 고된 상황이 모자의 죽음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 주변인에 따르면 A씨는 아들의 몸집이 커지면서 점점 제어가 어려워진다는 말을 최근 1~2년새 자주 지인들에게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로 개교가 연기돼 장성한 장애 아들을 돌보는 일이 오롯이 A씨의 몫으로 떠넘겨지면서 아이를 키우는 내내 마음 깊이 자리했을 우울이나 비관의 감정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선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곤경이 B군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B군처럼 자폐성 장애를 가진 경우 하루 일과 패턴이 갑자기 바뀌거나 낯선 환경에 노출되면 부쩍 민감해진다.

여러 전문가들은 “잔뜩 예민해진 발달장애 학생을 하루 종일 혼자 돌보다보면 주 양육자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극에 달할 것”이라며 “코로나로 학사일정이 중단된 상황에서 장애학생들에게 비장애학생과 똑같은 수준의 돌봄대책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전문가는 “아이의 장애가 자신 때문이라고 느끼기 쉬운 부모들은 감염병 전파 가능성으로 개교가 연기된 학교에 아이를 보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도 부연했다.

현재 제주에는 1507명의 특수교육 대상 학생(5~20세 내외) 중 478명이 도내 공·사립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중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된 기간 긴급돌봄을 신청한 학생은 107명이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