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중구의 시중은행 딜링룸. 정부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 확대 발표로 장중 한때 9원까지 내렸던 원·달러 환율이 상승세로 돌변하자 외환 코퍼레이션(콥) 딜러들의 움직임이 부산해 졌다. 달러 매도세가 매수세로 전환되며 고객 콜(주문)이 쏟아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터지고 환율이 10원 넘게 출렁이는 게 예사긴 했지만, 오늘은 정말 심하네요.”
금융회사 돈을 직접 운용하는 딜링룸은 코로나 사태로 극심해진 시장 변동성을 최일선에서 겪는 곳이다. 한 외환 딜러는 “지금처럼 폭락 장세에 공포심이 가득하면 여기(딜러)도 신경이 곤두선다”며 “각종 지표 등에 집중하는 분위기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래도 사수, 부사수가 있어서 돌아가며 밥은 먹고 옵니다. 뭐 요즘 도시락 많이 먹긴 하는데 바쁘기도 하고, 그냥 나가기 귀찮아서 그러기도 하고요.”
갑작스럽게 덮친 코로나 금융위기를 두 달 간 겪어온 금융권은 ‘분주함’과 ‘망연자실’이란 상반된 감정에 휩싸여 있다. 주가를 비롯해 외환·채권 등 시장이 극심하게 출렁이면서 패닉에 빠지는 한편, 이번 위기가 ‘금융 이슈’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한 증권사 직원은 “주가가 내리면 분위기가 안 좋고, 올라도 여전히 안 좋다”며 “금융 이슈로 발생한 거라면 변명이라도 할 텐데 이번엔 아예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는 산전수전 다 겪었다 자부하는 여의도 증권가 사람들에게도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한 증권사 트레이딩부서 직원은 “미국에서 연일 서킷 브레이커(매매 일시정지)가 발동하고 다우 지수가 3000 포인트 가까이 추락하는 걸 보면서 ‘저게 가능했던 숫자(폭락)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연일 고꾸라지는 주가에 주식·파생거래 부서는 자포자기에 빠졌다. 증권사 관계자는 “서로 (실적 등에 대해) 뭐라고 하는 분위기도 아니다”며 “트레이더마다 포지션(상승·하락) 차이는 있겠지만 올해도 채권부서가 먹여 살려야 할 거 같다”고 했다.
주가·경제 전망 등을 발표하는 증권사 리서치센터 역시 ‘긴장 모드’에 돌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물론 ‘1987년 블랙 먼데이’와 ‘1930년대 대공황’, 심지어 1, 2차 세계대전 당시 경제 지표까지 들여다보는 상황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전염병이란 게 워낙 이례적 사건이다 보니 과거 3~10년 수치만 봐선 전망을 참고하기 어렵다”며 “미국 시장은 80~90년 전 데이터까지 뽑아가며 참고할 게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다른 연구원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고객들에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이유도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다만 코로나로 인한 ‘기록적 폭락’이 자본시장 종사자로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길게 보면 위기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른 애널리스트도 “이렇게 시장이 망가졌던 경험이 없다보니 경제 여파를 분석할 정확한 데이터도 아예 없지만,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전망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로 업무 환경이나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도 변화가 있잖아요. 지금은 좀 힘들지만 시장분석뿐 아니라 (금융권)전문직으로서 어떻게 일하면 좋을지 고민해 보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양민철 조민아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