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40대 쿠팡맨의 비극… “과로·무한경쟁이 혁신인가”

입력 2020-03-18 17:14
40대 쿠팡 택배기사가 배송 도중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18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관계자들이 노동 환경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원들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올해 3월 택배물량은 작년 8월보다 22% 증가하며 업무강도가 세졌다며 휴식권 보장과 새벽배송 중단 등을 주장했다. 최현규 기자

쿠팡맨 김모(46)씨는 지난 12일 오전 2시쯤 경기도 안산의 한 빌라 4층 계단에서 쓰러진 상태로 동료에게 발견됐다. 입사 4주차였던 김씨는 일주일 동안의 교육을 마치고 배송을 시작한 지 13일 만에 변을 당했다. 당시 그에게 맡겨져 있었던 물량은 1회차에만 70여개로 알려졌다. 경찰은 부검 결과 김씨의 사인이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성 질환인 허혈성 심장질환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왜 쓰러졌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배송량 급증이 이유로 지목되는 가운데 기업의 ‘무한경쟁 시스템’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18일 서울 영등포구 공공운수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본의 탐욕 앞에 비인간적 노동에 내몰리는 쿠팡맨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쿠팡맨이 새벽 서울의 한 빌라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18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쿠팡맨 1명에게 배정되는 물량은 그 전에 비해 22% 정도 늘어났다. 국민일보 DB

기자회견에서는 동료 쿠팡맨들이 참석해 김씨의 죽음이 예견됐었다고 입을 모았다. 5년차 쿠팡맨 정진영씨는 사망한 김씨에게 배정된 물량이 과하게 많았다고 했다. 정씨는 “사측에서는 신입에게 충분한 교육과 함께 적응기간 동안 다른 쿠팡맨의 50% 정도의 물량만 배당한다고 하지만 만나본 신입들은 모두 베테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양을 배송하고 있다”면서 “야간에 주간과 다를 바 없는 물량을 소화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쿠팡맨들은 6개월 전에 비해 20% 늘어난 물류를 처리했다. 지난해 8월 쿠팡맨 1인의 배송물량은 242개였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지난달 25일에는 340개로 100개 가까이 늘었다. 안산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쿠팡맨은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1가구 당 주문량이 늘어났다”면서 “빌라촌이 많은 안산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 많아 8개짜리 생수병 묶음을 들고 3분 안에 5층 꼭대기까지 내달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숨진 김씨가 과로했던 이유가 정규직 전환 등의 압박 때문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쿠팡맨들은 “쿠팡맨들은 ‘잡 레벨’로 불리는 평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만 계약을 유지하거나 정규직 전환 등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조찬호 쿠팡지부 조직국장은 “첫 3개월 동안 얼마나 배송을 빨리 하는지에 따라 근무 연장과 정규직 전환 여부가 결정되다보니 무리하게 운전하다 사고를 내는 경우도 있다”면서 “1년 미만 퇴사자가 많아 쿠팡맨들 사이에서는 무한경쟁으로 혁신(革新)을 혁신(革身)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망 전 가족 등에게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지난해 12월에 비해 물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면서 “(쿠팡맨) 정규직 전환 역시 경쟁을 통해 일부만 전환되는 체제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며 비정규직도 정규직과 동일한 복리후생을 받는다”고 밝혔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