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최대 피해 지역인 중국 우한에서 가족의 죽음이나 환자의 마지막 절규를 지켜봐야 했던 주민들과 의료진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중국인들이 성묘를 하는 4월 4일 청명절 기간에 우한 사람들이 숨진 가족들의 유골을 찾고 뒤늦은 장례식을 하면서 트라우마가 집단 분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내에서 코로나19 전염은 진정됐지만, 우한 시민들과 의료진은 이제부터 트라우마와의 싸움을 시작했고, 최소한 1년 동안 고통이 지속될 수 있다고 전문가를 인용해 18일 보도했다.
우한의 임시병원에서 심리 상담을 해온 심리학자 펑창은 “일부 환자들은 불안감으로 인한 수면장애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가족을 잃은 충격 때문에 늘 불평하고 화를 내는 환자들도 있었고, 일부는 식사조차 거부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치료가 끝나 임시 병원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면 남아 있던 환자들은 자신의 병세가 악화됐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며 ”병원 의료진이 환자들과 춤을 추거나 노래방에서 가창 대회를 연 것도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병이 완치돼 퇴원한 환자들은 지역 사회나 학교, 직장으로 돌아갔을 때 전염병을 앓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토로하고 있다.
펑창은 “체내에서 바이러스가 일단 죽고, 병에서 회복된 환자들은 전염되지 않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퇴원한 환자들을 부당하게 대우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환자들과 가족 뿐 아니라 의료진도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상하이 정신건강센터 부소장인 왕젠은 코로나19 중증환자가 많았던 우한 진인탄병원의 경우 의료진의 30% 가량이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2월부터 상하이 심리 지원팀을 이끌고 우한에서 환자와 의료진의 심리 상담 지원을 했다.
왕젠은 “일부 의사와 간호사들은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살인적인 업무 부담 때문에 일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간 뒤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그 때문에 우한 의료진에게는 수십 병의 수면제가 전달됐다”고 말했다.
왕젠은 “우한 의료진은 초기에 그렇게 많은 환자들이 한꺼번에 숨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며 “환자들은 죽는 순간에도 의식이 살아있어 고통으로 고함을 지르며 도움을 호소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간호사와 의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4월 4일 청명절 즈음에 우한 사람들은 2개월간의 봉쇄가 풀려 거리로 나가 쇼핑을 하거나, 일부는 코로나19로 숨진 가족의 유골을 찾기 위해 장례식장에 갈 것”이라며 “그때가 우한 사람들의 심리 상태가 드러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인들은 청명절 휴일 기간에 조상들의 묘지를 찾아 성묘를 하는 풍습이 있다. 우한에서는 추가 감염 우려와 봉쇄 조치 때문에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진 사람들의 시신은 가족들 없이 화장됐다.
따라서 청명절에 우한 사람들이 가족들의 유골이 임시 보관된 곳으로 가고, 장례를 치르면서 또 한 차례 집단적 트라우마가 분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