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본소득 100만원’ 현실화되나

입력 2020-03-18 14:42 수정 2020-03-18 16:59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난기본소득 도입 주장이 나오면서 현실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단 정부는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가 심각해지면서 정부가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재난기본소득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이 연달아 제안하면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미 일부 광역·기초 자치단체가 일괄 지급이 아닌 소상공인 등 수혜대상을 한정해 재난기본소득 지급에 나선 상황이다.

전북 전주시는 실업자와 비정규직 등 5만여명에게 ‘긴급생활안정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지원금’을 52만7000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강원도는 소상공인, 실직자 등 도민 30만명에게 1인당 4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원희룡 제주지사 등 지자체장 뿐 아니라 조국 전 법무부장관,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정치인 다수가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재난기본소득 명목으로 전 국민 100만원 지급이 현실화 된다면 50조원 가량의 재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이란 재산이나 소득, 고용 여부, 노동 의지 등과 무관하게 정부 재정으로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다. 특정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한 복지 차원에서 제공하는 것과 다른 점은 ‘모든 국민'에게, 소득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원칙상 같은 액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재난기본소득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을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제공하자는 개념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약칭: 재난안전법)’ 제4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발생한 피해를 신속히 대응ㆍ복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만약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한다면 ‘재난으로 발생한 피해에 신속히 대응할 계획을 수립·시행하라’는 재난안전법 조문을 관련 논의의 법적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다만 법적 해석 여부가 애매해서 재난기본소득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국가재정을 소요하는 행위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한 국회에서 의결된 예산을 근거로 해야 한다. 때문에 재난기본소득을 위해 정부가 국가 재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예산 의결을 받던지 아니면 재난기본소득 집행을 위해 국가재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9년 3월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한 우체국으로 '기본소득'을 신청하려는 시민들이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 사례를 보면 일본은 2009년 자민당 아소 다로(麻生太郞) 정권 시절 정액급부금(定額給付金) 제도를 일회적으로 실시했다. 소비 진작을 통한 경기 활성화를 목표로 시행됐다. 일본에 주소가 있는 모든 자국민과 외국인등록증이 있는 합법적 외국인 체류자들에게 기본 1인당 1만2000엔(약 13만9000원)을 지급했고, 18세 이하와 65세 이상자에게는 8000엔을 추가로 얹어 지급했다.

이탈리아는 ‘시민 소득’(reddito di cittadinanza)으로 번역되는 기본소득 제도를 지난해 도입했다. 다만 극빈층과 실업자에게 생계 보조금을 주는 제도여서 전 국민에게 동일액을 주는 것은 아니다. 월 수입이 780유로(약 106만원)가 안 되거나, 일자리 없이 임대 주택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국민은 1인당 월 40∼780유로(약 5만5000원∼106만원),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정은 월 최대 1300유로(약 177만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미국 행정부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 완화를 위해 자국민들에게 사실상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키로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미국인들에게 1인당 1000달러(124만원)를 2주 내 지급하는 방안을 포함한 1조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고 있다. 1인당 지급액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