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역사학자 이이화가 18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대중 눈높이에 맞는 친숙한 역사서를 꾸준히 펴내며 ‘역사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부친을 따라 전북 익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버지가 학교를 보내주지 않아 한문 공부를 하고 사서(四書)를 배우며 유년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출을 했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학을 하다가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대학에서도 학업을 이어갈 순 없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외판원, 술집 웨이터, 학원 강사로 일하며 밥벌이를 했다.
그러나 다양한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소홀히 하진 않았다. 고전번역원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에 들어가 고전을 번역했다. ‘허균과 개혁사상’ ‘척사위정론의 비판적 검토’ 같은 글을 각종 매체에 기고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계간지 ‘역사비평’을 펴내는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도 관여했고, 이 연구소에서 제2대 위원장도 지냈다.
저서 중에서는 ‘한국사 이야기’(전 22권)가 유명하다. 개인이 내놓은 한국 통사로는 가장 스케일이 큰 역사서다. 1995년 집필을 시작해 2004년에 완간한 이 작품은 여타 한국사 책들과 달리 민중사와 생활사에 초점을 맞춘 의미 있는 저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인은 ‘한국사 이야기’ 외에도 ‘인물로 읽는 한국사’ ‘만화 한국사’ ‘주제로 보는 한국사’ 등 100권 넘는 책을 발표했다. 사학자들의 연구는 일반적으로 특정 시대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고인은 달랐다.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는 책들을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다.
통념에 어긋나는 주장으로 관심을 끈 적도 많았다. 그는 민족주의 사관을 배격할 것을 주문하면서 이순신 장군이나 독립운동가 김구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를 내리곤 했다. 예컨대 그는 2008년 한 인터뷰에서 “두 분(이순신, 김구)은 각각 훌륭한 장군이고 독립운동가지만 마치 혼자 나라를 살린 구국 영웅처럼 과대포장된 면이 없지 않다”고 주장했다.
단재상과 임창순 학술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원광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도 맡은 바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희씨와 아들 응일씨, 딸 응소씨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