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어야 물량 때려박기 그만할 건가” 쿠팡맨의 호소

입력 2020-03-18 12:08

3년 차 쿠팡 배송노동자(쿠팡맨) A씨가 업무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A씨는 1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최근 쿠팡맨 김모(46)씨가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일에 대해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저는 연배가 비슷하다 보니 ‘나도 겪을 수 있다’는 불안이 든다”며 “농담으로 할 얘기는 아니지만, 동료들끼리는 ‘올 것이 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람이 죽어 나가야 엄청난 물량을 때려 박는 걸 그만하려나’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A씨는 “저녁 7시에 출근해서 다음 날 오전 7시 30분 정도에 퇴근하는 시스템으로 일하고 있다. 밤낮이 바뀐 상태”라며 “예전에는 낮 배송만 있었다. 그런데 새벽 배송이 생겼고, 새벽 배송이 1차·2차 배송으로 쪼개졌다. 물량이 최소 10배 이상 늘었다고 표현해도 적지 않다”라며 쿠팡맨의 높은 엄무 강도를 설명했다.

A씨는 사망한 김씨의 업무 강도도 설명했다. 그는 “그분이 새벽 근무로 1차 물량을 70~80가구 정도 들고 나갔다. 이 물량이면 첫 배송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밤 11시 30분이다. 늦어도 새벽 3시30분까지는 배송을 마무리해야 했다”며 “1가구당 3분꼴로 배송을 완료해야 한다. 이건 많아도 너무나 많은 물량이다”라고 말했다.

독자제공. 국민일보 DB

진행자가 ‘물량이 10배 이상 늘었으면 사람 수도 그만큼 늘어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묻자 A씨는 “비정규직으로 입사해서 2년을 생활하고 3년 차에 들어가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그 2년을 버티는 분들이 10%가 되지 않는다. 시스템상 버티는 분들이 극소수”라며 “너무 힘들다. (노동자를) 굉장히 압박하는 회사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마지막으로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물량을 쏟아붓게 되면, 인간적인 생활 자체가 안 된다. 인간적인 생활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에 진행자가 ‘1시간 물건 나르면 쉴 수 있을 정도 시간은 확보돼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씀이냐’고 묻자 A씨는 “맞다”고 답했다.

앞서 쿠팡맨 김씨는 지난 12일 새벽 경기도 안산지역의 한 빌라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김씨의 배송이 장시간 멈춘 상태로 회사 관리시스템에 나타나자 근처에 있던 동료가 사측 지시에 따라 이 빌라로 찾아갔고, 4층과 5층 사이에 쓰러져 있던 김씨를 발견했다. 당시 김씨는 심정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부검 결과 김씨의 사인이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여러 발병 원인 중에는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도 포함된다. 쿠팡 지부를 산하에 둔 전국공항항만운송본부 김한별 조직부장은 17일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물량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업무 스트레스나 그 물량을 소화하기 위한 압박감이 많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