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집사로 활동하다 네덜란드에서 체포된 데이비드 윤(한국명 윤영식)씨가 현지 법원의 한국 송환 결정에 불복, 상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애초 빠르면 6개월 정도로 예상되던 그의 송환 시간은 더욱 길어질 전망이다. 검찰은 국정농단 사태 당시 삼성그룹의 뇌물 사건, 서울 내곡동 헌인마을 뉴스테이 사업과 관련한 부정한 청탁에 연루된 혐의 등으로 윤씨를 수사선상에 올려둔 상태다.
1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씨는 지난달 네덜란드 노르트홀란드 법원에서의 범죄인 인도 재판에서 한국 송환 결정을 받은 뒤 “돌아갈 수 없다”며 현지 대법원에 상소했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1심의 판단에 대해 항소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결정 뒤 윤씨의 송환까지 6개월을 예상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3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씨의 이번 상소가 기각되면 네덜란드 법무장관이 송환을 명령하게 되지만, 윤씨가 버틸 기회는 더 남아 있다. 윤씨는 송환 명령 이후에도 행정소송의 형태로 실질적인 3심을 요청할 수 있다. 이때 한국 송환이 또다시 결정되더라도, 윤씨에게는 유럽연합(EU) 인권재판소에 제소할 기회가 주어진다. 계열사 자금 횡령 혐의를 받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녀 유섬나씨는 EU 인권재판소 제소를 포기했음에도 도피 뒤 3년 만에야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송환됐었다.
윤씨는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할 무렵인 2016년 9월 독일로 출국한 뒤 종적을 감췄다. 향후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특검의 조사 과정에서 그는 ‘비선실세’ 최씨의 독일 내 생활비 조달, 코어스포츠 운영을 돕던 이로 지목됐다. 삼성그룹이 최씨 측에 건넨 말들의 ‘세탁’에 관여해 범죄수익을 은닉했다는 의혹도 받았지만 거의 유일하게 베일에 싸여 있던 인물이다. 검찰은 이런 윤씨에 대해 2017년 12월 여권 무효화 조치를 하는 동시에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고, 윤씨는 지난해 6월 1일 네덜란드에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서 현지 헌병에 의해 검거됐다.
윤씨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뒤 한국 정치 상황을 볼 때 박해받을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독일 유명 주방용품 기업 휘슬러의 독점 판매를 빙자한 사기 범죄를 저질러 2012년부터 한국에서 복역한 이력이 있다. 윤씨는 이때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지인에게 “우리는 엄청난 기회를 가지게 됐다” “나의 부친은 이제 한국 대통령의 삼촌이 된 것이다” “최(서원) 원장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서신을 써 보낸 일이 드러나기도 했다.
국정농단 사태 관련자들의 수사를 마치고 막바지 공소유지 중인 박영수특검은 윤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질 경우 추가 증거 제출도 검토했다고 한다. 박영수특검 관계자는 “유무죄 부분은 가려진 건 사실이지만, 증거로 낼 기회가 없어진다는 측면에서는 아쉽다”고 말했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유럽에서의 송환은 매우 더디지만, 결국 정의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