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영화’ 생존명제, “웃기고, 울려라”

입력 2020-03-18 10:07
영화 ‘정직한 후보’. 뉴(NEW)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일일 극장 관객 수가 3만명 대로 급감하면서 영화계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국에도 입소문을 타며 ‘조용한 흥행’을 이어가는 영화들이 적지 않다.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시원하게 웃기거나, 눈물 나게 무섭거나.

지난달 12일 영화 ‘정직한 후보’은 16일 기준 관객 150만명을 모으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코로나19로 침체한 극장가에 전해진 반가운 소식이었다. 영화는 거짓말을 달고 살던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이 별안간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이 녹아든 작품인데, 줄기 서사는 좌충우돌한 코미디다.

영화의 손익분기점 돌파는 한 달 넘는 ‘장기상영’을 통해 이룬 성과다. 무엇보다 진입장벽이 낮은 코미디 장르라는 점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던 2월 같은 시기 개봉작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1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고른 연령층의 선택을 받았다. 배급사 뉴(NEW) 관계자는 18일 “12세 관람가의 건전한 코미디 영화라 관객층 확장 가능성이 컸던 것 같다”고 했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정직한 후보를 빼고 ‘히트맨’ 뿐이다. 이 작품 역시 유쾌한 코미디물이다. 전직 국정원 암살 요원이 조직의 비밀을 웹툰으로 풀어내며 일어나는 황당무계한 일들을 액션을 더해 풀어낸다. 지난달 16일 기준 관객 240만명을 끌어모으면서 제작비를 거둬들였다.

호불호가 적은 코미디 반대편에서는 마니아들을 겨냥한 공포·스릴러 장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쏘우’로 잘 알려진 스릴러 명장 리 워넬 감독의 ‘인비저블 맨’은 지난달 26일부터 3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을 달렸다. 투명인간과 싸우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긴박하게 풀어내면서 입소문을 탄 덕이다. 관객 42만명을 모으면서 공포영화로는 준수한 흥행 성적을 거뒀다.

상대적으로 저예산인 공포·스릴러물은 상업영화 비수기인 상반기에 주로 개봉한다. 마니아 위주 장르라서 여건에 휘둘리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코로나19 여파 속 대다수 작품이 개봉을 강행하면서 한동안은 호러물 강세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판의 미로’로 유명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스케어리 스토리: 어둠의 속삭임’(25일)을 비롯해 ‘세인트 아가타’(19일), ‘온다’(26일)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주문형비디오(VOD) 시장에서도 유사한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온라인상영관 박스오피스 3월 첫 주 집계에 따르면 ‘클로젯’(5만2403건)이 VOD 출시 직후 곧장 2위에 올라섰다. 클로젯은 옷장 속 귀신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물이다. 1위는 히트맨(7만8570건)이었다.

전문가들은 코미디와 공포·스릴러 장르의 흥행 근저에 코로나19로 확산한 대중적 심리가 깔려있다고 봤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최근 코미디와 공포물, 그리고 ‘컨테이젼’ 등 재난물의 흥행은 대중의 정서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며 “현실을 잠시 제쳐 두고 웃음으로 위안을 얻고픈 심리와 두려운 현실이 투영된 작품에 이끌리는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고 봤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