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군대나 갔다올 걸”… 외로운 ‘코로나 학번’ 새내기들

입력 2020-03-17 17:30
한 학생이 17일 오전 고려대학교 구내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다. 강보현 기자

“화나고 짜증나요. 이럴 바에야 군대나 먼저 갔다 올 걸 그랬어요.”

올해 고려대에 입학한 권모(19)씨는 오전 9시 학생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자취방에 돌아가 하루 종일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권씨가 올해 초 합격 소식을 듣고 꿈꿨던 대학생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산산조각 났다. 지방에서 올라온 데다 학사일정이 모두 연기돼 선배나 친구를 사귈 기회를 얻지 못한 권씨는 온라인 강의가 끝나면 혼자 PC방이나 농구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가 대학가를 강타하면서 올해 입학한 ‘코로나 학번’들은 전례 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새내기 시절을 보내고 있다. 동아리나 학회, 조별과제 등 사실상 학내에서의 모든 대면 활동이 전면 중단돼 학생들은 소속감조차 느낄 수 없다고 호소한다.

연세대 신입생 신모(19)씨는 17일 “지금 온라인 강의가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서 인강(인터넷 강의) 듣는 것과 뭐가 다르냐”며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입학하자마자 농구 동아리에 가입하려고 했던 이모(19)씨는 ‘활동이 재개돼야 모집한다’는 소식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수년간 함께 생활해야 할 학과 선배나 동기의 모습을 카카오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확인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연세대 신입생 김모(20)씨는 “카톡 사진이랑 실제랑 다를 수도 있으니, 나중에 학교에서 만나면 알아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선배들의 눈에도 ‘코로나 학번’이 처한 현실은 애처롭다. 서울시립대에 다니는 2학년 지모(19)씨는 “바로 위 학번으로서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알려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며 “3월 중순인데 아직 신입생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학교 신입생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학생증을 발급받지 않아 도서관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강보현기자

이날 둘러본 캠퍼스 분위기도 평년 같지 않았다. 고려대에서 주차안내를 하는 한 직원은 “학교에서 10년간 일했는데 이렇게 교내에 사람이 없는 것 처음 본다”고 했다. 매년 이맘때쯤 신입회원 모집 경쟁을 벌이던 정경대 앞 민주광장은 인적이 드물었고, 두세겹씩 동아리와 학회 안내 포스터가 붙었던 게시판도 곳곳이 비어있었다. 평소 공부하거나 조별과제를 하는 학생들로 가득한 100석 규모의 교내 카페에도 손님은 3명 밖에 없었다. ‘대학 버스’라 불리며 고려대와 경희대, 한국외대 학생을 가득 태우고 다니던 273번 버스에도 승객은 9명 밖에 없었다.

각 대학이 대면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면서 학생들은 학내 시설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상 운영을 중단한 경희대 학생식당은 전날 오후 2시까지 인터넷으로 예약한 사람에게만 도시락을 판매하고 있었다. 중앙도서관도 오전 10시와 오후 2시, 오후 4시 등 하루 세차례만 미리 신청을 한 학생들에 한해서 대출이 가능했다.

학생증 발급도 받지 못한 서울시립대 신입생들은 아예 학교 내 건물에 접근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립대 관계자는 “20학번 학생증은 4월에 일괄지급할 예정”이라며 “그 전에는 학교 내 건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전했다.

반면 오히려 면학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일부 재학생도 있었다. 고려대생 송모(27)씨는 “평소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이 줄어들어 좋은 자리를 맡기 수월해졌다”며 “신입생들에게는 안타깝지만 공부에 집중해야만 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조용해서 좋다”고 말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