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갈 수 있는 선수는 소수에요. 요새 선수들끼리 만나면 재수 걱정을 해요.”
쇼트트랙 1500m 선수인 이형우(18·서현고)군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의 권유로 스케이트를 신었다. 이후 11년 동안 쉬지 않고 얼음을 지쳤다. 빠른 속도로 상대방을 제칠 때 느낀 쾌감 덕이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엔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따내며 국가대표의 꿈도 꾸게 됐다.
고교 진학 후 슬럼프가 찾아왔다. 지난해 2월엔 오른쪽 발목 인대가 끊어져 수술까지 받았다. 재활기간 1년이 예상됐던 큰 부상. 이 군은 피나는 노력으로 반년 만에 빙판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복귀 무대였던 전국 동계체전에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메달 획득의 꿈에 부풀어있을 찰나, 이번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모든 대회가 연기됐다. 부상 때문에 올 시즌 수상 실적이 없는 이 군으로선 재수까지 걱정해야 하는 청천벽력의 소식이었다.
이 군은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다음 대회에선 메달을 따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는데 너무 아쉽다”며 “유일하게 문을 연 동네 헬스장에서 혼자 체력 훈련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어머니 김정희(48·여)씨도 “정확한 대회 스케줄이 없어 아이들이 뭘 해야 할지 몰라 예민해진 상태”라며 “부모들도 링크, 스포츠센터가 모두 문을 닫아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계종목인 빙상의 시즌은 보통 10월 초 시작해 4월 초 끝난다. 이 군 같은 고3 학생들은 예년 같았으면 현 시점에선 대부분의 대회를 마감하고 대입을 위한 대회 성적 요건을 충족한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가장 중요한 5개 대회중 3개 대회(중고등학교 빙상경기대회·빙상인 추모 전국남녀 빙상경기대회·학생종별선수권대회)가 7월 말 이후로 연기돼 붕 뜬 상태다.
훈련할 링크도 대부분 문을 닫은 상황. 학생들은 빙상 위가 아닌 헬스장에서 체력훈련만 하고 있다. 대회가 언제 열릴지 확실치 않아 그나마 컨디션이라도 유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한 클럽 코치는 “언제 대회가 열릴지 대한빙상연맹에서 명확한 날짜를 제시해줘야 제대로 준비를 시킬 텐데 ‘잠정 연기’ 상태라 운동을 시키기도, 시키지 않기도 애매한 상태”라며 답답해했다.
연맹은 새로 대회 개최 날짜와 장소를 잡기 애매하단 입장이다. 감염병 위기대응 단계가 ‘심각’으로 유지되고 있어 다수가 집단으로 모여야 하는 대회 일정을 확정하기 힘들다는 것. 대회 일정이 고3 학생들의 대입에 연동돼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여전히 입시 일정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도 문제다. 연맹 관계자는 “학교도 개학을 연기하고 수시 일정이 어떻게 정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우리도 대회 일정을 확실히 밝히기 어려운 상태”라고 밝혔다.
애가 타는 건 고3 학생들이다. 9월 초 수시 접수에 맞춰 대회 성적을 기입하지 않으면 대학 진학이 어려워진다. 8월에 모든 대회가 다시 열릴지도 미지수라 지난 시즌까지의 성적만으로 수시에 지원해야 할 수도 있다. 대다수 대학은 과거 성적을 올 시즌 성적만큼 쳐주지 않는다. 한국체대 입시 요강도 ‘전년도 입상실적은 1등급 하향 평가한다’고 규정한다. 대학에서도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재수를 생각하는 것이다.
한 고교 코치는 “8월에 모든 시합을 다 뛰어야 하는데 그 때까지도 대회가 안 열릴까 우려된다”며 “그럴 경우 지난 시즌까지의 성적만으로 대학에 가야 할 판인데 경험과 실력이 좋았던 선배들이 졸업하면서 이제 메달의 주인공이 돼야했던 고3 학생들로선 기회를 잃은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각 대학의 수시 모집 요강 발표가 5월 초로 예정돼 있지만 대학에서도 수시 일정이나 성적 처리 방식을 논의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5월 초 이전 정부 발표 상황을 반영해 요강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한국체대 입시학생팀 관계자는 “수시 일정과 관련된 교육부 지침이 있는 상황도 아니라 현재로선 모든 학교들이 관련 논의를 하지 않는 상태”라고 밝혔다.
결국 현장의 혼란은 정부의 정확하고 신속한 입시 일정 발표만으로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정부는 다음달 6일까지 개학을 미루는 3차 개학 연기안을 17일 발표했다. 하지만 입시 일정과 관련해선 ‘고교 개학 연기가 더 장기화할 가능성을 고려해 여러 가지 변경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만 짧게 전했다.
정부 부처들도 각기 혼란스런 모습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는 “학사 일정이 이렇게 늦어질지 아무도 예측을 못해 이제부터 공론화가 돼야 할 시점”이라며 “수시 일정도 연기가 필요할 텐데 교육부에서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도 “운동부 말고 일반 학생들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라며 “입시 일정 변화는 현재까지 필요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상태”라고 애매하게 대답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