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Fn터치]유동성이 말라 버린 진짜 이유

입력 2020-03-17 15:54 수정 2020-03-17 17:41
CP 시장 경색에 MMF 마저 매도 가세
기업과 은행 자금난에 자사주 매입중단, 주가하락 부채질
미 연준, 바주카포 과시 불구 CP안정책 놓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로 하여금 지난 15일(현지시간) 바주카포 수준의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동원하도록 만든 것은 시중에 유동성이 급격히 말라들었기 때문이다.
17일 국제금융센터 분석에 따르면 씨티은행 뱅크오브어메리카(BofA) 등 월가의 많은 투자은행들은 근본 원인이 기업어음(CP) 시장 경색에 있었음에도 연준이 이를 빠트린 채 바주카포식 화력을 동원하는 바람에 월요일인 16일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기업들은 예기치 못한 자금이 필요한 경우 통상 CP를 통해 융통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CP발행 수요가 늘어났다. 더욱 문제는 머니마켓펀드(MMF)가 투자자들의 펀드자금 인출 증가를 예상해 현금확보를 위해 보유중인 CP 매도에 나서자 딜러들의 인수 부담이 커지게 되면서 CP 시장 불안을 더 부채질한 것이다.(MMF는 투자신탁회사가 고객의 돈을 모아 주로 금리가 높은 CP나 CD(양도성예금증서) 등 단기금융상품에 집중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는 실적배당상품이다. 하루만에 찾을 수 있는 등 만기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투자처가 마땅치 않을 경우 단기간 고수익을 올리기위해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AA등급 비금융기업의 CP 금리와 OIS 스프레드는 지난 1월말 4bp(1bp=0.01%포인트)에서 이달 12일 101bp로 급등하면서 2008년 금융위기(140bp)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CP시장 유동성 경색은 MMF의 유동자산 감소로 이어져 펀드런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 투자신탁협회(ICI)에 따르면 지난 4일 현재 MMF의 잔고는 정부 관련 채권만으로 운용하는 거번먼트형이 2조7500억 달러, 투자대상 제한없이 CP 등을 편입한 프라임형이 7980억 달러에 이른다. 금융위기 이후 MMF 규제가 강화되면서 개인보유 비중이 높은 프라임형은 유동자산을 준자산가치의 30% 이상 보유하도록 했다. 따라서 CP 시장 유동성이 경색될 경우 MMF 유동자산 규모 감소도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지면서 투자자들의 펀드런이 촉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CP 시장 유동성 경색은 은행들에 자금조달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CP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은 기업들이 크레딧 라인(credit line, 은행대출창구)으로 이동하면서 은행들의 부담이 확대된 것이다. 크레딧 라인은 일종의 마이너스통장으로 당장의 수요보다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우려한 나머지 현금 확보를 위해 이를 활용하려는 대기업들이 늘고 있어 은행들의 부담이 커진 것이다.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의 경우 25억 달러의 크레딧 라인을 활용해 현금 확보에 나섰다. 유럽의 항공기 리스업체 에어켑 홀딩스도 40억달러 상당의 한도를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들의 크레딧 라인 폭주로 은행들은 자금압박을 받으면서도 정작 미 연준이 한도를 완화해준 디스카운트 창구(단기 연준 대출) 이용은 꺼리고 있다. 연준에서 돈을 빌릴 경우 은행 건전성 지표에 영향을 준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말 현재 미국 은행들의 추가 크레딧 라인 한도는 2조5000억 달러지만 이는 코로나19 등 외생적 충격을 반영하지 못하는 규모다.
국제금융센터는 “은행들의 크레딧 라인 사용에 따른 적정 유동자산 예상치도 이같은 충격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므로 은행권의 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지적한다.

현금이 말라가니 주가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과 은행이 줄줄이 자사주 매입 중단 조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갭, MGM 등에 이어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등 주요 8개 은행까지 나서 자사주 매입 중단을 선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미국 증시에서 기업은 3조6000달러 어치를 샀고 외국인은 2000억달러 어치를 순매수했다. 반면 미국의 가계는 4000억달러 어치를 팔았고, 연기금은 1조5000억달러를 순매도했다.
그런데 올 들어 2월까지 기업들이 발표한 자사주매입 규모는 1220억 달러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50% 가량 줄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를 우려한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 중단에 가세하면서 증시는 기댈 언덕마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미 연준이 취할 다음 조치로 CP시장 안정책을 들고 있다. 우선 금융위기 당시 썼던 정책으로는 CPFF(Commercial Paper Funding Fcility)가 있다. 은행들의 자금조달 압박을 완화하는데 유용하다. 유한책임회사(SPV)에 연준이 3개월 대출을 해주고, SPV가 발행시장에서 CP를 직접 매입하는 방안이다. SPV가 만기까지 CP를 보유한 뒤 원금을 연준에 상환하는 방식이다. 2008년 10월 도입 당시 각 회사별로 1~8월까지 CP 최대 발행액을 매입한도로 설정했다.

또 프라임 MMF의 유동성을 원활하게 해줄 방안으로는 CPDPF(Commercial Paper Dealer Purchase Facility)가 있다. 연준이 프라이머리 딜러들이 보유한 CP를 사주는 것이다. 220억~400억달러 매입시 추가 5%의 유동성 비율 확보가 가능해 연준은 300억~500억 달러의 적은 금액으로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도입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CP안정책은 연방준비법 13조 3항에 따라 재무부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이다.
뱅크오브어메리카는 CP 지원을 지연시킬 경우 MMF에서 대규모 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적절한 조치와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