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적잖은 민주화 인사들이 여자 문제로 발목이 잡혀 결정적 순간에 제 할 일을 못 했다. 덫인 걸 알고도 빠져들었다. 심지어 종교인도 술과 여자를 탐했다.
서울 신촌은 환락가 중 하나였는데 민주화 인사와 종교계 인사 일부가 자주 드나드는 곳이기도 했다. 내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알려지면, 친분이 쌓인 분들이 내게 연락해 참석할 것을 권했다.
그런 자리에 참석하면 나는 항상 시험에 들었다. “아 저분들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면서 정작 자신들의 삶은 저렇게 망가진단 말인가”하는 실망감이었다.
특히 기독교계 인사들의 타락은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분명 몇몇이고 일부이긴 하다. 그런다 하더라도 그들이 술자리에서 보여준 타락적 행위는 민망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은혜의 강을 앞두고도 청계천 썩은 물에 뛰어들고 있었다.
신촌 룸살롱이라는 뜻 밖의 상황에 마주한 나는 그들이 먹고 마신 비싼 유흥비를 계산해야 했다. 그 시절 한국은 너무나 가난했으므로 내가 가진 ‘적은 돈’이 보탬이 됐을 것이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