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결국 ‘빅컷’(0.50% 포인트 인하)을 단행했다.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0%대 금리 시대로 들어섰다. 한국경제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제로금리’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한 지 약 12시간 만에 내린 결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경제 위기론이 고조되면서 미국과 유럽 등에 이어 글로벌 양적완화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실물경제와 금융 안정에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선 의구심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16일 오후 임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재의 1.25%에서 0.75%로 0.50% 포인트 인하했다. 이번 결정은 17일부터 적용된다. 한은이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금리를 내린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9·11테러’ 직후인 2001년 9월(0.50% 포인트 인하)과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0.75% 포인트 인하) 인하한 적이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금통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글로벌 경기 위축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도 상당히 커졌다”면서 “주요국, 특히 연준의 큰 폭 인하가 한은이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 줬다”고 금리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이 총재는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과 관련, “국내·외 금융시장 상황의 변화, 주요국 정책금리의 변화 등에 따라 상당히 가변적이다. 모든 수단을 망라해 적절히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한은은 이날 금리인하와 함께 금융중개지원대출 금리를 연 0.50~0.75%에서 연 0.25%로 인하키로 했다. 이 대출은 한은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중은행에 저리로 공급하는 자금이다. 한은은 또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 대상 증권에 은행채도 포함하기로 했다. 유동성을 충분한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다.
이날 한은의 금리인하 결정은 전격적이었다. 미 연준이 1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기존 1.00~1.25%에서 0.00~0.25%로 1% 포인트 인하했다. 이에 당초 17~18일로 예상됐던 한은의 임시 금통위 일정이 앞당겨졌다.
기준금리 인하가 시중은행 대출 금리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 조절에 따른 인하는 곧바로 반영되지 않는다”며 “통상 0.25% 포인트 내리면 시중금리는 0.20~0.30% 인하로 반영되는데, 은행마다 대출 수요 등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빅컷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만시지탄’이라는 지적과 더불어 코로나19의 확산세, 정부의 추가 재정 정책을 주시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인하 타이밍이 늦었다는 게 대다수의 평가다. 하지만 시장으로선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상황에선 자금 압박을 겪는 기업들에 정책 자금을 선별해 효과적으로 투입하는 게 중요한데, (이번 인하로) 부동산 문제 등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리 정책만으로는 영세 취약계층, 중소기업, 항공업계 등에 돈이 효과적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재찬 양민철 조민아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