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도 볼키스도 축구도 사라졌다… 이것이 유럽일까

입력 2020-03-16 17:48 수정 2020-03-16 18:38
1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의 노천 레스토랑이 텅 비어있다. AP연합뉴스

보통 때라면 관광객과 시민들로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을 비엔나의 카페,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엔 뽀얗게 먼지만 쌓여있다. 미술 애호가들과 유럽 각국에서 견학 온 학생들이 벨라스케스와 고야, 무리요의 작품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있었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의 갤러리엔 방역 작업 중인 사람들만 오갈 뿐. 광장과 경기장은 텅텅 비었다. 사람들이 서로 안부를 물으며 반갑게 ‘볼키스’를 나누며 왁자지껄했을 파리의 거리엔 적막만 가득하다.

바이러스는 유럽인들의 일상을 빼앗아갔다.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공원과 광장을 산책하고, 축구 경기에 열광하던 사람들의 생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마비됐다. 사람들은 이제 사람을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15일(현지시간) 코로나19가 유럽사회를 사회를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불안감과 공포에 감염시키고 심지어 분열시키는 중이라고 전했다. 어깨를 부딪치거나 볼키스를 하며 카페나 거리에서 친밀감을 나타내던 유럽인들이 각자의 집으로 숨어들고 각국이 국경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 종신회원이자 불가리아 자유주의전략연구소장 이반 크라스테프는 “코로나19는 국가간 경계가 아닌 개인간 경계를 만들었다”면서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내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기쁨 또는 위로의 표현인 볼키스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이같은 사실을 증명한다.

스페인 마드리드 중심부에 위치한 카야오 광장을 15일(현지시간)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쓴 채 걷고 있다. 카야오 광장은 평소 시민들과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장소다. 로이터 연합뉴스

크라스테프 소장은 동시에 난민 수용에 인색한 유럽을 꼬집었다. 그는 “이제 유럽인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은 난민이 아니라 모두가 됐다”면서 “난민들조차 전쟁과 전염병 중 무엇이 더 무서운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는 수도 마드리드를 ‘그라운드 제로’라고 표현했다. 매체는 “영국 등과는 달리 좋은 기후 덕분에 실내보다는 길거리와 해변 등 야외가 생활의 중심이었던 스페인 사람들에게 지금과 같은 상황은 더욱 치명적”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을 넘어 세계의 축구팬들이 열광하던 영국 프리미어리그와 이탈리아 세리에A,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는 경기를 중단했다. 이탈리아에선 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 경기장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경기장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 비토리오 그레고티(92)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졌다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연대와 위로를 보여주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전국민의 발이 묶인 이탈리아에선 시민들의 각자의 집 발코니에 나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풍경이 등장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는 시민들이 오후 10시에 맞춰 발코니로 나와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포착됐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 특별보좌관인 나탈리 토치 독일 튀빙겐대 명예교수는 “사람들은 코로나19를 두려워하면서도 여전히 대부분 책임감과 연대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BBC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3개국에서 이날 하루동안 최다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에선 368명의 사망자가 늘어 총 사망자 수가 1809명으로 증가했다. 스페인에서는 152명이 추가로 숨져 사망자 수가 292명으로 전날 대비 2배로 뛰었다. 프랑스에서도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사망자 수는 120명을 넘어섰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