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호수 북서쪽 호숫가에 ‘타브가’(Tabgha)라고 불리는 장소가 있다. 일곱 개의 샘이란 의미를 지닌 희랍어 ‘헵타페곤’(Heptapegon)을 아랍어로 옮긴 것이다. 이곳을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엔 세바’(Ein Sheva)라고 부른다. 지명이 의미하는 것처럼 일곱 개의 샘이 있었던 곳이다.
타브가 지역을 지나다 보면 두 개의 기념교회가 연이어 보인다. 그중 하나가 베드로 수위권교회(Church of the Primacy of St. Peter)이다. 요한복음 21장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비잔틴 시대(주후 4세기)에 처음 기념교회가 세워졌다. 하지만 비잔틴 시대 기념교회는 1263년 회교도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됐다. 그 후 이곳은 700년간 방치됐다가 1934년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오늘날과 같은 기념교회를 세웠다.
이곳에 여러 차례 방문해 보았지만 누구도 왜 이곳을 요한복음 21장 사건의 현장이라고 생각하는지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에서조차 지역의 특징을 말해줄 뿐 요한복음 사건의 현장이라는 결론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 사건의 현장을 찾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성경의 사건이 일어난 후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복음서가 기록되었고 또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이 사건의 현장을 보존하고 알려주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찾고 확인하는 것은 많은 학문적 연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요한복음 21장 사건의 현장이라고 주장하는 이곳은 그 이유가 통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좀 특별하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자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다. 갈릴리 호수의 어부 출신이었던 제자들이 예전의 생업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들이 호수로 돌아와서 처음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나갔다면 아마 고기가 가장 잘 잡히는 장소를 찾아갔을 것이 분명하다.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 베테랑 어부들이었으니 호수의 사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요한복음 21장 사건의 현장을 찾는 일은 이와 같은 추론에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그러면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가 많이 모이는 곳이 어디겠는가? 고기의 습성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물이 만나는 곳에 고기들이 모인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일곱 개의 샘’에서 물이 나와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곳이 타브가 주변이다. 그날 제자들이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았던 장소가 바로 타브가 주변의 호숫가였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후 늦은 시간에 마지막 방문지로 이곳을 찾는다.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시간을 피해서 우리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버스에서 내려 기념교회 문을 들어서자마자 시원하게 흐르는 수로를 보게 된다. 주변의 샘에서 솟아난 물이 흘러간다. 깨끗한 잔디밭, 잘 정리된 주변, 나지막이 자란 종려나무,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운 벤자민 가로수는 성지답사로 지쳐있는 우리에게 평안함을 듬뿍 안겨준다. 벤자민 나무 밑을 100m쯤 걸어 들어가면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게 된다.
왼편으로 1934년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세운 조그마한 기념교회가 보인다. 현무암으로 건축된 탓에 진회색을 띠는 기념교회가 베드로 수위권교회이다. 예수님은 그날 새벽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묻고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는 분부를 하셨다(요21:16-17). 가톨릭에서는 이것을 예수님이 베드로를 수제자로 임명하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곳 기념교회 이름이 베드로 수위권교회다. 로마 바티칸에 있는 베드로 대성당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어쩐지 너무나 작고 수수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에게는 그 점이 더욱 정이 가고 마음이 끌리는 곳이다.
이 조그마한 기념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앞쪽으로 바위가 하나 보이는데 밤새 지친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이 물고기를 구워 아침을 준비하신 것을 기념하는 바위다. 기념교회에서 나와 왼편으로 계단을 몇 개 내려가면 하트 모양의 돌들을 만난다. 처음 기념교회가 세워질 당시 주춧돌로 사용되었던 것인데 예수님의 사랑을 기념하고 상징하기 위해서 하트 모양으로 디자인했다고 한다. 요한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저녁 식사 장면을 ‘주님이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요13:1).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곳은 이곳 갈릴리 호수가 아닌가 싶다. 주님은 부활하시고 갈릴리 호수로 찾아오기 전에 이미 두 번 제자들을 만나 주셨다. 그리고 고기 잡겠다고 갈릴리로 돌아온 제자들을 세 번째로 찾아오신 것이다(요21:14).
이 하트 모양의 주춧돌에서 오른쪽을 보면 벤자민 나무 아래에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모습이다. 그 동상을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예수님이 나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실 것만 같다. 조그마한 모래사장을 걸어 물가로 가본다. 그리고 요한복음 21장 말씀을 함께 읽어 내려간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인다. 예수님의 질문에 “주님 누구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언제나 이곳에서 부르는 복음송이 있다.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기도도 이 찬양에 모두 실어 예수님께 보낸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주님은 ○○○에게 물으셨네 사랑하는 ○○○야 넌 날 사랑하느냐 오-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
김상목 성경현장연구소장(국민일보 성지순례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