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에 닥친 ‘코로나 패닉’으로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금(金)마저 주춤하는 극단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 ‘일단 현금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공포 심리가 퍼지면서 상대적으로 환금성이 떨어지는 금을 팔아치우는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주식시장 폭락세가 시작됐던 지난 9일, 국제 금 선물 가격(4월 인도분 기준)은 온스당 1700달러까지 치솟으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어 코로나19 확진자가 미국과 유럽 등지로 본격화되면서 증시 하락이 가속화됐다. 그런데 금값도 덩달아 무너지며 지난 14일 온스당 1522달러선까지 떨어졌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급 기준금리 인하(1.00%p)에도 온스당 1540달러 수준으로 반등하는데 그쳤다. 반면 같은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의 경우 연 0.689% 수준까지 내려가며(채권값 상승) 역대 최저치를 이어가고 있다.
통상 금, 채권 등 안전 자산의 가격은 금융위기 상황에서 급등하는 경향을 보인다. 위험 자산(주식 등)에서 빠져나온 수요가 안전 자산으로 몰리는 ‘리스크 오프’(Risk-Off) 현상 때문이다. 금은 가치가 훼손되지 않아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어 선진국 국채, 미국 달러 등과 함께 전통적인 안전 자산으로 분류돼 왔다.
금값이 주춤한 이유는 뭘까. 금융투자업계는 코로나 사태로 극심해진 변동성 장세에서 ‘유동성 확보’가 제 1순위가 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최진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자산시장에서 ‘마진 콜’(선물 가격 변화에 따른 추가 증거금 납부)을 대비하기 위한 현금 보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안전 자산 선호 심리가 일시적으로 후퇴했다”고 말했다. 주가 급락 등에 따라 현금이 필요해 지면서 급한 대로 금이라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 가격 하락은 일시적 조정에 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금은 중앙은행들의 정책 방향에 따라 가격이 좌우되는 경향을 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현금 보유 수요가 늘고 미국 연준의 1차 양적완화(QE1) 개시 시점에서 금값이 급락했다가, 이후 저금리 기조와 더불어 풍부한 유동성 환경이 갖춰지면서 2011년 온스당 1800달러 선까지 상승했었다.
최 연구원은 “글로벌 증시에서 추가 급락이 발생한다면 금 가격 역시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도 “저금리와 유동성 확대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금값은 장기적으로 1800달러 선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