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금리조정 시계’가 더 빨라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제로금리’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하면서다. 미 연준의 ‘빅컷(1% 포인트 인하)’에 한은이 ‘매(통화긴축 선호)’에서 ‘비둘기(통화완화선호)’로 얼마만큼 변신할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 연준은 1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기존 1.00%~1.25%에서 0.00%~0.25%로 1%포인트 인하했다.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에서다. 지난 3일 0.5% 포인트를 인하한지 12일 만이다. 미국이 ‘제로금리’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내린 건 2015년 12월 이후 4년 3개월 만이다.
16일 금융권의 관심은 한은의 움직임에 쏠렸다. 미국의 전격적인 인하 조치에 한은의 임시 금융통화위원회 일정이 앞당겨질지 여부에 관심이 컸다. 증권가에선 당장 이날 금통위가 개최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애초엔 오는 17~18일(현지시간)로 예정된 미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일정 전후로 임시 금통위가 개최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날 한은은 오전 내내 묵묵부답이었다. 이주열 한은 총재에 대한 오전 출근길 대면 취재도 이날부터 차단됐다.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이라고 한은 측은 설명했다. 금융권에선 갑작스런 미 연준의 빅컷 단행에 한은으로선 다양한 방정식을 고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도 ‘빅컷’을 고민 중일 것이다. 다만 당초 예정된 일정보다 앞당겨진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발표에 검토할 사안이 갑자기 많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리 인하에 따른 실질적인 효과에 대한 한은의 고민도 거론한다.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장을 감안해야 하고, 대출 부실 가능성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금융권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폭을 5% 포인트까지 기정사실화한다. 이 경우, 현재 기준금리인 1.25%에서 0.75%로 낮아진다. 동시에 사상 처음으로 ‘0%대 기준금리’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한은이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금리를 내린 것은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9월(0.50% 포인트 인하)과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0.75% 포인트 인하) 두 차례다. 모두 빅컷이었다.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실물·금융 피해 정도를 감안할 때, 빅컷 수순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에 이은 양적완화 조치는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금융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연준으로서는 파격적인 시장 안정책을 내놓은 셈이지만, 시장은 오히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불안정한 상황을 더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이번 대책은) 원인 치유가 아닌 증상 완화 조치”라며 “경기침체가 심화할 경우 통화정책 여력이 제한되고, 향후 통화정책 정상화 때의 충격도 크다”고 평가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