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하거나 대사 이상이 있는 사람은 심장 벽이 두꺼워지는 ‘비후성 심근증’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질환은 치명적 부정맥을 부르고 젊은층 심장 돌연사의 흔한 원인 중 하나다.
그간 비후성 심근증 발생에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걸로 알려졌으나 비만과 고혈압·고지혈증 등 대사 이상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음이 새로 밝혀져 주목된다.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김형관, 박준빈 교수는 2009~2014년 국가건강검진을 받은 2800만여명을 추적, 관찰했다. 이 중 비후성 심근증이 발병한 785명의 자료를 분석해, 비후성 심근증 발생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를 파악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16일 밝혔다.
비후성 심근증은 대동맥판 협착증이나 고혈압 등의 특별한 원인 없이 좌심실 벽이 두꺼워지는 심장질환이다. 이로 인해 심장 이완기에 좌심실로 혈액이 채워지는 과정에 지장을 받아 심부전(심장 기능 저하)이 발생할 수 있다. 심방세동(심방이 가늘게 떠는 질환)이 동반될 수 있고 이에 따른 뇌졸중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 치명적 부정맥인 심실빈맥 혹은 심실세동 위험도 있으며 젊은 연령에서 발생하는 심장 돌연사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다.
연구팀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아시아인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기준에 따라 7851명을 각각 저체중(118명), 표준 체중(1782명), 과체중(2029명), 경도 비만(3435명), 중등도 비만 이상(487명)으로 분류했다.
이때 과체중, 경도 비만, 중등도 비만 이상은 표준 체중에 비해 비후성 심근증 발생위험이 각각 약 1.5배, 2.2배, 2.9배 높았다.
BMI가 높아질수록 발생 위험이 일관되게 상승했다. BMI가 1씩 증가함에 따라 비후성 심근증 발생위험도 11%씩 증가했다.
이런 경향은 복부 비만의 척도인 허리둘레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허리둘레가 복부 비만 기준( 남성 90㎝, 여성 85㎝) 이상인 4848명은 그렇지 않은 3003명에 비해 비후성 심근증 발현 위험이 1.7배 높았다.
또 동일한 BMI 그룹이더라도 당뇨,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 등), 고혈압으로 대표되는 대사 이상이 동반된 사람들은 비후성 심근증 발현 위험이 더 높았다.
단순히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심근 비후는 고혈압이나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에게서도 종종 관찰된다. 해당 원인을 잘 관리하거나 치료하면 심근비후는 나아지기도 한다.
다만 비후성 심근증은 다르다. 유전적 이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심근비후 발현 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가령 동일한 유전자 이상을 공유한 가족이라 할지라도 한 명은 심근벽 비후가 심한 반면, 다른 이는 정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유전적 요인 외에 비후성 심근증 발현을 유발하는 요소를 밝혀낼 필요가 있었다.
김형관 교수는 “타고 나는 유전자와 달리, 비만 및 대사 이상은 충분히 개선이 가능한 영역”이라며 “비만, 대사 이상이 다른 심혈관 질환들처럼 비후성 심근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고한 것이 이번 연구의 의의”라 설명했다.
박준빈 교수는 “지금까지는 비후성 심근증으로 인한 증상이 나타난 후에야 대응하는 방식으로 진료할 수 밖에 없었다”며 “비만과 대사 이상을 조절해 비후성 심근증 발현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진다면, 질환의 선제적 예방을 목표로 하는 진료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유럽 예방심장학회지(European Journal of Preventive Cardiology)’ 최근호에 발표됐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