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신탁 받은 부동산 안 돌려줘도 횡령죄 아니다”

입력 2020-03-16 10:21

남의 이름을 빌려 그 앞으로 부동산을 등기를 한 경우,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부동산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부동산의 실제 소유자가 다른 사람에게 등기 명의를 이전하는 ‘양자 간 명의신탁’을 한 때에는 명의수탁자가 해당 부동산의 반환을 거부해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김미리 부장판사)는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B씨의 부모로부터 부동산의 지분을 명의신탁 받았다. 이후 B씨 부모가 사망해 그 재산을 상속받게 되자 B씨는 A씨에게 지분을 돌려달라고 했다. A씨는 이를 거부했고, 검찰은 A씨를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부가 이 같은 ‘양자 간 명의신탁’의 경우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대법원 판례(2014도6992)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에 있어 횡령죄 성립을 부정한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또 명의수탁자는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2016년 부동산 실제 소유자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수탁자가 신탁 받은 부동산의 반환을 거부하거나 임의처분한 경우에도 이를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같은 불법적인 명의신탁은 형법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은 부동산 매수인이 자기 명의로 등기하지 않고 제3자 명의로 등기하는 것으로 양도소득세 중과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양자 간 명의신탁’은 자신의 명의로 등기된 부동산을 약정에 따라 타인 명의로 등기하는 것으로, 종중재산을 종중원 명의로 관리하던 관행 등이다. 이 경우 수탁자가 임의처분 시 횡령죄로 처벌해 왔다.

재판부는 “횡령죄의 본질인 신임관계는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으로 한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법을 어긴 불법적인 관계에 불과한 ‘양자 간 명의신탁’ 약정은 형법상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 아니다”며 “명의수탁자 역시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태희 선임기자 t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