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사장님, 오늘은 좀 거하게 먹어도 되겠네요. 노무라 사장님 오셨는데 허리끈 풀고 먹어야죠. 시바스 리갈 어떻습니까?"
김훈광이란 청년이 호기롭게 양주를 시켰다. 내 나이쯤 됐을까? 신학생이라고 했는데 허우대가 좋았다. 학생이라기보다 우리 업소 오빠들 모양 거들먹대는 스타일이었다. 닳고 닳은 불량배 같았다.
그는 늘 영미에게 집적대곤 했다. 홍 사장이 이곳에 오면 영미를 주로 찾았음에도 그의 눈을 피해 순식간에 영미의 가슴을 쥐곤 했다.
"숙희야, 나이도 어린 게 아주 양아치 같지 않니. 재수 없어. 너도 조심해. 곁을 주지마. 눈빛이 너무 싫어."
영미가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김훈광은 성북구 월계천 근처 어느 동네 출신으로 그 지역에선 제법 소문난 깡패였다. 청량리역에서 지게 짐 날품팔이 하는 집 아들이었는데 그 아버지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절게 되자 중랑천 뚝방에 판잣집을 얼기설기 지어 이사했다고 했다.
그는 그곳에서 청계천 봉제 공장 다니는 아가씨들 봉급을 강탈하거나 학생들 주머니를 털곤 했다. 그에게 능욕을 당한 아가씨들도 있다는 소문이 돌아 마을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신기한 것은 180cm 큰 키의 덩치가 165cm 정도에 지나지 않은 바싹 마른 홍 사장을 하늘 같이 떠받든다는 것이다. 황금마차에서도 그는 홍 사장 입안의 혀처럼 굴었다.
우리는 그래서 전도사라는 홍 사장을 대단한 사람으로 보았다. 더구나 부자나라 일본 목사인지 사업가인지 아무튼 돈 많은 분도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훈광이 노래 하나 해봐라."
선배에게 한 소리 들어 기분이 상한듯한 홍 사장이 그를 지목했다. 아가씨들에게 유들유들 허세를 떨던 그가 "예!"하면서 허리를 곧추세우더니 젓가락 두 개를 양손에 각각 잡았다.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한 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
그는 남진의 노래를 시원하게 불렀다. 큰 체구답게 목소리가 굵고 화통했다.
홍 사장이 노 선생님에게 "절마가 그래도 집회 가면 찬송가를 잘한다 아입니꺼. 성도들이 껌벅 합니다"라며 말했다. 노 선생님은 애매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앵콜~너 신학생 하지 말고 세상 노래해라. 무인가 신학교 다녀봐야 말짱 헛거다."
<계속>
글·사진=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