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코로나19 발원지는 미국”이라고 물고 늘어질까

입력 2020-03-15 17:29 수정 2020-03-15 18:02
코로나19 발원지 우한을 방문한 시진핑 국가주석.신화연합뉴스

중국이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관련 “발원지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일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에 화살을 돌리고 있어 배경이 관심을 끈다. 최근에는 “미군이 우한에 전파했을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이는 논란을 일으켜 시진핑 국가주석에 쏠린 ‘책임론’을 회피하면서 전염병 발병국이란 오명을 역사에서 지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최근 코로나19가 중국에서는 뚜렷한 진정세를 보이는 반면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중국에 절묘한 타이밍을 주고 있다.

중국 호흡기 질병 전문가인 중난산 중국 원사가 지난달 27일 “코로나19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출현했지만, 꼭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히면서 ‘코로나19 미국 발원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중국 관영매체는 일부 일본 매체를 인용해 “독감으로 사망한 일부 미국 환자가 실제로 코로나19 의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며 미국을 공개 거론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12일 트위터 계정에서 “미군이 우한에 코로나 19를 가져왔을 수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이에 미국 국무부는 추이톈카이 미국 주재 중국 대사를 초치해 자오 대변인의 언급에 항의하는 등 양국의 외교문제로 비화됐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 대변인은 구체적인 근거를 대지 않았지만, ‘미군 전파설’은 최근 인터넷에 떠돈 소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우한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참가한 5명의 선수가 전염병에 걸려 격리 치료를 받았는데 이게 코로나19의 발원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선수들을 치료했던 우한 진인탄 병원은 “외국인 선수 5명이 말라리아에 걸려 치료했었다”며 “결코 코로나19와는 관련이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병원 측이 이미 부인했는데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그런 소문에 미국을 추가해 발원지를 미국이라고 몰고가는 셈이다.

하지만 미군은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데 왜 군인체육대회에 잠깐 참여한 미군이 유독 우한에만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을 퍼뜨렸고, 왜 중국에서 폭발적으로 확산됐는지 설명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출현을 가장 먼저 알리고 자신도 감염돼 숨진 의사 리원량.

미국 독감을 코로나19와 연관시키는 것도 논리적 비약이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3400만 명이 독감에 걸렸고 2만여 명이 사망했는데, 일부 독감 사망자가 코로나19 확진자로 밝혀졌으니 실태를 공개하라는 게 자오리젠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우한에서 퍼진 코로나19가 미국까지 확산됐다는 근거가 될 수 있지만, 미국인이 우한에 바이러스를 퍼트렸다는 논리로는 약해 보인다.

미국에서는 매년 독감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2017~2018년 겨울에는 무려 6만1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년 미국에서 발생하는 독감이 유독 올해만 코로나19로 바뀌어 우한을 초토화했는지 의문이다.
코로나19 발원지로 지목된 우한 화난수산시장.

만약 미국이 코로나19 발원지라면 초기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전염병이 확산돼야 하는데, 왜 중국 우한의 화난수산시장에서 집단발병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는지 설명이 안 된다.

중국은 이미 야생동물을 먹는 무분별한 식습관이 전염병 확산의 근원이 된다고 보고 야생동물 식용을 금지하는 안건을 통과시키기까지 했다.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야생동물을 무분별하게 먹는 구습을 뿌리 뽑고, 인민 군중의 생명과 건강,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 후 며칠만에 미국을 코로나19 발원지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코로나19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나 우한 질병통제예방센터 실험실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중국 내 연구팀에 의해 제기됐는데도 묵살하고 있다.

중국 화난이공대 샤오보타오 교수 등은 화난수산시장에서 약 280m 떨어져 있는 우한 질병통제센터에서 박쥐 605마리 등 연구용 동물을 실험실에 보관했는데,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연구원이 코로나19 ‘0번 환자’라는 소문도 돌았다.

따라서 중국이 코로나19 발원지로 미국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확진자 8만여 명에 사망자가 3100여명이 발생한 대형 인재(人災)를 초래한 시진핑 지도부의 책임론을 회피하고, 자국내 실험실 유출설 등 치명적인 의혹을 덮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가 야생동물을 먹는 중국인의 식습관에서 비롯됐다며 야생동물 거래를 고발하는 중국 매체 보도.

또 무시무시한 ‘전염병 발병국’이란 오명을 역사에서 지우기 위한 차원으로도 보인다.

실제 1918년 프랑스 주둔 미군부대에서 첫 환자가 발생해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돼 50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스페인 독감’은 발원지가 스페인과 무관하다.

2차 대전 전시통제를 하지 않던 스페인에서 자유로운 보도가 이뤄지면서 스페인 독감이란 오명이 씌워졌다.

중국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침에 따라 ‘우한 폐렴’에서 ‘코로나19’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명칭을 바꾼데 이어 발원지까지 미국 등 다른 나라로 바꿔 역사에서 흔적을 지우려고 시도하는지도 모른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자국 내 전염병 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 각국 정상들에게 위로 전문을 띄우는 등 ‘전염병 방제 모범 국가’ 이미지를 구축하는 등 성과는 과시하고 과오는 지우려 하는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미 중난산 원사가 지난달 말 갑자기 “꼭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선언할 때부터 중국 지도부가 이런 시나리오를 준비했을 것으로 의심될 정도로 하나하나 치밀하게 진행되는 분위기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