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공연을 취소한다고 해도 비난이 거세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확산해 서울을 덮었다. 공연들이 줄줄이 막을 내리는 상황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팀의 시름도 깊어졌다. 지난해 12월부터 2달간 부산 공연을 성료하고 서울 공연을 준비하려던 시기와 감염병 확산세가 맞물렸다. 일단 미국으로 떠났던 이들은 고심 끝에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기다려준 서울 관객을 3달 간 만난다. 2012년 이후 7년 만이다.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개막을 앞두고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감염병 상황에서 관객이 얼마나 찾아올지 알 수 없었다. 개막 당일인 14일 오후 7시 저녁 공연 한 시간 전부터 포토존에 점차 인파가 모였다. 기존 내한공연 만큼 인파가 북적이지는 않았으나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주최 측은 공연장 입구에 열 감지기를 설치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모든 관객의 체온을 체크하고 세심하게 살폈다. 곳곳에 손 소독제를 배치했고 모든 스태프와 관객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공연 전부터 ‘마스크를 착용해달라’는 공지를 띄웠고 관객 한 명 한 명 착용 여부를 확인했다.
세계적인 공연이라는 명성만큼 공연장 자리가 빼곡하게 채워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연 후 커튼콜이 시작되자 관객 대다수가 기립해 환호했다. 공연 취소 위기에서 근심했을 배우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손키스로 화답했다. 공연을 고대했을 관객석 곳곳에서도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보였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1988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19세기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한 이 공연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 유령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귀족 청년 라울의 엇갈린 사랑이야기다.
이 공연은 무려 30년 동안 수정 없이 그대로 이어져왔다. 라이너 프리드 연출은 “작품을 수정하지 않았던 게 롱런 비결”이라며 “논의가 있긴 했지만 손대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얼마나 탄탄하게 잘 만들어졌는지 실감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 딱 하나가 바뀌었다.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샹들리에다. 유리구슬 6000개로 장식된 가장 상징적인 장치로 극 초반부터 등장해 객석 1열 바로 위 천장으로 서서히 올라간 뒤 공연 내내 떨어질 듯 말 듯 위태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크기는 2012년과 같으나 훨씬 가벼워졌다. 원하는 위치에 빠르게 떨어뜨려 유령의 분노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다. 샹들리에는 유령의 분노가 극에 달할 때 추락한다. 1막을 끝내는 복수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알리스터 킬비 기술감독은 “초당 낙하 속도는 지난번보다 1.5배 빨라진 초속 3m”라고 설명했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샹들리에 아래는 동화처럼 꾸며져 대비를 이뤘다. 무대 디자이너 마리아 비욘슨이 재현한 파리 오페라하우스는 시각적 황홀감을 선사했다. 크리스틴을 태운 나룻배가 지하 호수로 내려올 때 자욱한 안개 사이로 은은한 촛불이 놓여있었고, 가장무도회 장면에는 고풍스러운 화려함을 채워넣었다. 크리스틴과 라울이 사랑을 나누는 오페라하우스 지붕은 별빛이 포근히 내려앉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청각적 몰입도도 거셌다. 극 안에서 재현되는 오페라의 넘버들은 유령의 심리를 반영했다. 유령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서 나홀로 암울했다. 유령의 성장기는 극 속 오페라 풍경으로 치환됐다. 1막 1장의 ‘한니발’, 9장의 ‘일 무토’, 2막 4·7장의 ‘돈 후앙의 승리’로 이어지는 서사는 유령의 심리에 기인한다. 유기적으로 얽힌 드라마적 서사는 캐릭터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했다.
서울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공연은 6월 26일까지.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