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코로나 패닉’에 빠지면서 글로벌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불과 52일 만에 17조 달러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한화로 따지면 1경9000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특히 미국 증시가 ‘1987년 블랙 먼데이’ 이후 가장 가파르게 하락했던 지난주엔 전 세계 증시에서 약 10조 달러(1경2000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증시 충격이 발원지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를 거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을 도미노처럼 휩쓰는 형국이다.
관건은 ‘코로나 쇼크’가 실물 경제지표에 미칠 여파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회사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이달 초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되면 올해 세계 경제는 마이너스(-) 0.1%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12일 코로나 팬데믹을 선언하며 ‘마이너스 성장’ 우려는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같은 날 “한국 기업들의 수출과 교역 의존도를 감안하면 올 상반기 실적 저하와 신용등급 하락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 충격을 가장 먼저 반영한 건 글로벌 증시였다. 15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 86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합계는 지난 12일 기준 72조4869억 달러(약 8경8000조원)로, 코로나 사태가 불거지기 전 고점인 1월 20일(89조1565억 달러) 대비 18.7%(16조7000억 달러)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8년 한국 국내총생산(GDP) 추정치(약 1조6999억 달러) 10배에 달하는 규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글로벌 폭락세가 두드러진) 지난 9∼13일엔 세계 증시 시가총액이 약 10조 달러(약 1경2180조원)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도 지난 1월 20일부터 이달 12일까지 1조4768억 달러에서 1조1505억 달러로 22.1%(3603억 달러, 한화 약 390조원) 줄었다. 미국 증시 시가총액은 18.84%(6조6922억 달러), 일본의 경우 19.71%(1조2368억 달러) 감소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이탈리아(-25.58%)를 비롯해 영국(-26.08%), 독일(-20.26%) 프랑스(-22.24%), 스페인(-21.90%) 등 유럽 국가들도 20% 넘는 감소율을 보였다. 정작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은 시가총액 감소율이 4.22%(3309억 달러)에 그쳤다.
이진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코로나 공포가 가속화되는 미국과 비교해 최근 정상화 징후를 보이는 중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주가가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촉발한 금융 불안이 어디로, 어떻게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가 미국이란 ‘엔진’ 하나로 지탱하던 상황에서 미국 내 코로나 확산 여파에 따라 글로벌 경제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에너지 기업의 하이일드(고수익·고위험) 채권 위험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6년 신흥국 위기 수준까지 급등했다”며 “코로나19는 생산과 소비 문제를 넘어 한계 기업들의 부실 우려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 하더라도 ‘V자’ 대신 ‘U자’ 반등이 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의 신용 위험(리스크)이 확대되지 않고 국제 유가가 회복된다는 전제에서 오는 2분기 이후에나 U자형 회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양민철 조민아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