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치 하나에 군 기지가 뚫렸다”…경보 먹통에 늑장출동까지

입력 2020-03-15 15:18 수정 2020-03-15 15:26

민간인들이 제주 해군기지(제주민군복합항)를 무단으로 침입한 것과 관련, 우리 군의 총체적인 ‘경계 실패’가 확인됐단 합동검열 결과가 나왔다. 미관형 철조망은 펜치에 뚫렸고, 침입 사실을 알려야 할 능동형 CCTV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합동참모본부는 최근 제주 해군기지 민간인 무단 침입 사건과 관련, 당시 경계 실태와 조치에 관한 합동검열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송모씨 등 민간인 4명은 지난 7일 오후 2시 13~16분쯤 제주 해군기지의 미관형 철조망을 펜치를 이용해 가로 52㎝, 세로 88㎝ 크기로 잘랐다. 송씨 등 2명은 기지로 침입해 오후 3시 50분까지 구럼비 바위가 있는 수변공원으로 이동하는 등 1시간30분 가량 아무런 제지 없이 기지 내부를 활보했다. 송씨 등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은 군용물 등 범죄에 관한 특별 조치법 위반 혐의로 송씨 등을 지난 9일 경찰에 고소했다.

조사 결과 군의 경계·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상당한 허점이 드러났다.

사람 움직임을 포착하면 경고음이 울리는 능동형 CCTV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합참에 따르면 해당 CCTV는 지난해 12월 교체됐지만, 기존 장비와의 호환 문제로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다. 감시병 2명이 CCTV 70여개를 확인하는 것도 문제였다. 송씨 등이 철조망을 자르고 침입하는 모습이 CCTV에 잡혔지만, 감시병들이 이를 놓쳤다.

‘5분 대기조’의 늑장 출동도 문제였다. 오후 3시 10~20분쯤 근무를 마친 인근 초소 경계 근무자가 철조망이 절단된 사실을 발견해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5분 대기조는 오후 3시52분이 돼서야 출동 지시를 받아 11분 뒤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조사됐다. 5분 대기조가 출동하는 데 40분 넘게 걸린 것이다. 합참 관계자는 “당시 상황실 근무자가 (상황) 조치를 누락했다”며 “5분 대기조가 (제때) 출동을 못하고 상황이 지체된 것은 지휘·관리가 소홀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밖에 해군 3함대는 오후 4시 7~16분 해군작전사령부와 합참에 관련사실을 알리는 등 늑장 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군은 제주 기지 전대장(대령)을 보직에서 해임했고, 지휘 책임이 있는 3함대 사령관(소장) 등 관련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