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번역가 강병철은 최근 국민일보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종간(種間) 전파된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인수공통감염병의 대유행은 점점 자주 찾아오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동물의 서식지를 빼앗으면서 살던 곳에서 내몰린 동물들은 과거보다 더 자주 인간과 접촉하게 됩니다. 이런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면 근본적인 대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지금의 불행은 우리가 자초한 것입니다.”
강병철을 인터뷰한 것은 ‘코로나 사태’로 주목받는 책 중 하나인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그가 번역했기 때문이다. 2017년 국내에 출간된 이 책은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콰먼의 작품으로 세계 곳곳에서 창궐하는 인수공통감염병의 실태를 파헤친 역작이다. 책에서는 메르스 조류독감 사스 에볼라 메르스 등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건너왔을 때 벌어진 죽음의 살풍경이 담겨 있다. 특히 책에 인용된 미국 바이러스학자 도널드 버크는 1997년 강연에서 향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로 코로나바이러스를 꼽았다. 강병철은 “이 책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외에도 요즘 서점가에는 전염병의 세계를 파고든 책들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질병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쓰러진 인류의 역사를 살피면서 질병이 바꾼 사회상을 그려내고 해법까지 제시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분위기다. 신간 가운데 눈여겨볼 만한 작품으로는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와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를 꼽을 수 있다.
‘세계사를 바꾼…’은 흑사병 천연두 결핵 스페인독감 등이 발병했을 때의 상황을 복기하면서 이들 전염병에 인류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들려준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전염병의 시대에 요구되는 지도자의 자세다. 안토니누스 역병이 로마 제국을 뒤흔들었을 때 황제였던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가 선제적으로 취한 조치는 “거리에 시체가 쌓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위생 문제 탓도 있지만 시민들이 질병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장례식 비용도 국가가 댔고, 군사비가 많이 증가하자 황실 자산을 매각했다. 저자는 지도자를 선출할 때 이런 질문을 던져보라고 조언한다. “역병이 발생하면 정신적인 면에서 국가를 이끌 수 있을까? 실용적인 면에서는? 여러 문제를 침착하게 하나하나 풀어갈 수 있을까?”
전염병 가운데 인류사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질병은 무엇일까. ‘질병이 바꾼…’에서는 결핵을 지목한다. 결핵으로 죽은 사람은 최근 200년 동안만 약 10억명에 달한다. 페스트가 가장 두려운 전염병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짧은 기간에 막대한 사망자”를 내서다. 페스트로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불과 5년(1347~1352) 만에 세상을 떠났다. ‘질병이 바꾼…’에는 이렇듯 전염병과 관련된 인상적인 이야기와 함께 질병이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사례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들 책 외에도 관심을 끄는 책은 한두 권이 아니다. 바이러스의 세계를 살핀 ‘바이러스 폭풍의 세계’, 메르스 사태 이후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팬데믹을 일으킨 바이러스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살핀 ‘판데믹: 바이러스의 위협’ 등이 대표적이다.
감염병을 다룬 문학 작품도 재조명받고 있다. 프랑스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그런 경우다. 흑사병을 마주한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내릴 정도로 인기가 상당하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현재 서점에서 시판 중인 ‘페스트’는 20여종이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진 2월 1일부터 이달 12일까지 ‘페스트’를 번역한 책들은 3500부나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2배나 판매량이 증가했다. ‘페스트’를 다시 찾아 읽는 분위기는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