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대구에서 첫 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31번째·신천지 신도)가 발생한지 한 달이 다돼간다. 누적 확진자수가 6000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이겨낼 수 있다”는 분위기가 대구를 감싸고 있다. 최근 며칠 동안 추가 확진자 수가 두 자리 수를 기록하고 이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하루 추가 확진자가 741명까지 올라갔던 때를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그동안 대구시민들이 견뎌야했던 ‘팬데믹 공포’와 이를 이겨낸 경험은 매일 새로운 곳으로 급속히 퍼지는 코로나19에 전 세계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 역할을 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외신들이 먼저 한국의 성숙한 민주주의와 대구시민들의 자발적 봉쇄가 가장 빠르게, 가장 효과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15일 그동안 겪은 대구의 경험을 담아 다섯가지 감염예방 수칙을 발표했다.
①자발적·의무적 ‘만인(萬人) 격리’
첫번째는 ‘만인(萬人)’의 자발적·의무적 격리다. 대구는 매일 같이 수백명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오자 시민들이 누구 가릴것없이 스스로 자발적 격리에 돌입했다. 바깥 출입을 하는 사람이 되레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대다수의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했다. 대구 동구에 사는 박모(54)씨는 “한 달 동안 저녁에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며 “저녁은 꼭 집에서 먹었고 주말에도 마스크를 쓰고 집 앞 공원에서 산책한 것을 제외하면 외출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개인들이 엄격한 절제를 생활화하자 공공단체와 시민단체, 일반 기업, 학교, 학원 등 단체들은 집회와 모임을 최대한 하지 않았다. 연일 이어지던 시민단체들의 야외 집회와 시위는 물론 기업과 공공기관의 아침 회의, 조회 등 5명이상이 모이는 모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시당국의 행정명령이 내려지긴 했지만, 이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도 노래방 PC방 유흥업소 등은 자발적으로 영업을 ‘올스톱’하고 문을 닫았다. 평소 시민들이 군집하던 도심지와 백화점, 식당 등은 텅텅 비었다. 하루 영업이 아쉬운 업주들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우선 코로나19를 막아야 한다”는 데 동참했다.
②무조건 2m 떨어지기
지금은 대구 뿐 아니라 전국 지자체가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이를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구체적인 일상생활에 철저히 적용하기 시작한 곳은 대구다. 시민들은 불가피하게 사람 많은 곳에 가게 되면 비말이 튀어도 감염으로부터 최소한의 방어막을 칠 수 있는 ‘2m 떨어지기’를 생활습관으로 만들었다. 2~3월초 부족사태를 빚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야만 했던 때를 제외하면 대구에선 버스를 탈때도, 지하철을 탈때도, 은행에서 볼일을 볼때도 무조건 2m 다른 사람과 떨어지기를 지킨다.
식당에서 각자 덜어먹기와 대화 금지, 한 줄 식사 등도 대구발(發) 코로나19 감염 예방 습관이 됐다. 마스크 쓰기도 대구에선 다른 형태로 이뤄진다. 다른 지방에선 타인으로부터 바이러스가 감염될까 두려워 마스크를 쓰는 게 일상화된 일이지만, 대구시민들 사이에선 “열이 나거나 감기 기운이 있으면 집에서도 마스크를 낀다”는 말이 일반화됐다. 혹시 내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집안 식구, 지인에게 퍼뜨릴 수 있다는 의식 때문이다.
대구 달서구에 사는 김모(42)씨는 “지난주에 몸살기운이 있어서 회사에 이야기해 자택근무를 했고 집에서도 마스크를 썼다”고 말했다.
③발열 오한 기침·가래 구토 설사 증세 있으면 ‘혼방’하기
대구 시민들의 또 하나 생활습관은 “몸이 아프면 무조건 ‘혼방(혼자 방에 있기’”이다. 발열 오한 기침 가래 같은 감기 증세는 물론 코로나19와 거리가 다소 먼 구토와 설사 증세만 있어도 시민들은 집안에 머물뿐 아니라, 다른 가족과의 접촉도 없애는 ‘혼방’에 돌입한다. ‘혼방’을 하지 않으면 가작 가까운 가족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옮기는 숙주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우려와 걱정 때문이다. 일단 감기 증상이 있는 사람은 마스크를 끼고 혼방에 돌입하고 동선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선별진료소나 드라이브스루 검사소를 찾아 코로나19 검체 검사를 받는다. 이런 생활습관 덕분에 보건당국은 대구에서만 5만건 이상의 바이러스검사를 할 수 있었다. 신천지신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감사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졌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④자가격리는 ‘새로운 시작’
대구에선 지난 12일 3주 이상의 격리와 음성 최종판정을 받은 신천지신도 5000여명의 자가격리가 해제되면서 새로운 경계령이 떨어졌다. ‘자가격리 해제=완치, 바이러스로부터의 해방’이란 등식이 아니라 ‘자가격리 해제=새로운 자가감시’란 인식이 시민들에게 배여 들고 있다는 것이다.
시당국은 자가격리 해제나 완치된 후에도 해당자들에게 “스스로 건강상태를 살피고 조금만 이상해도 보건당국에 전화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시민들도 주변의 해당 지인이나 가족들의 건강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
⑤자율적 ‘대구 봉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은 사태 초기 감염증 발생사실조차 숨기기에 급급하다 바이러스를 지닌 시민들이 중국 전역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갑자기 사회주의정권답게 우한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교통은 물론, 물자조차 유통되지 않을 정도였다. 우한안에서도 수만명이 감염되고 매일 100여명이 숨졌다.
일주일사이에 1만8000여명의 확진자가 나온 이탈리아는 벌써 5일 이상 전국 도시를 다 강제봉쇄했고, 스페인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도시의 강제 봉쇄와 이동 제한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의식이 없을 경우 효율적인 감염예방 대책이 못한다. 오히려 공포심을 확산시켜 사제기와 매점매석 등 부정적 효과를 유발한다. 투명하고 공개된 정보의 정확성도 없으니 봉쇄지역의 시민들은 마치 ‘탈출하고 싶은 죄수’의 심리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대구는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도시 봉쇄에 가담했다. 스스로 타지로의 이동을 자제하고 오겠다는 친지들의 방문도 거절했다. 정부 보건당국과 시의 대책과 절차를 믿고 따랐고, 매점매석 사제기 같은 행태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들의 자발적 도시봉쇄는 매일 공개되는 질병관리대책본부의 투명한 정보와 효과적인 치료대책, 시당국의 신속한 행정조치가 그 기반이 됐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