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결국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창당이라는 ‘루비콘강’을 건넜다. 여당 스스로 자신들이 개정한 ‘선거법’의 취지를 무력화하며 ‘실리’를 택한 것이 승부수가 될지 정치적 도박이 될지는 불분명하다. 그동안 여당 지도부는 “비례용 정당 창당은 없다”고 공개 발언해왔지만 미래통합당에 1석을 내줄 수도 있다는 ‘공포 마케팅’으로 명분을 만들었다.
민주당은 13일 4·15 총선에서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참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을 통해 비례의석 싹쓸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맞대응이 불가피하다는 현실론을 내세웠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미래통합당은 페이퍼 위성정당이라는 탈법으로 국회 의석을 도둑질하는 만행을 저질러 선거법 개혁 취지를 반대했다”며 “당 대표로서 국민들에게 이런 탈법과 반칙을 미리 막지 못하고 부끄러운 정치의 모습을 국민께 보이게 돼 매우 참담하고 송구하다”고 했다.
민주당은 애초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용 정당 창당을 거세게 비난해왔다.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을 만들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정당을 급조해, 선거법 개정 취지를 무력화하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에 대해 “가짜 정당”, “꼼수 위성정당”이라고 비난해 왔다.
하지만 친문 진영을 중심으로 총선 패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당 지도부가 동조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이대로 가면 통합당은 지역 선거구에서 지고도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장회사의 우회 상장 편법이익으로 원내 1당이 될 게 뻔하다”는 보고서를 마련해 당에 전달했다.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도 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고 총선을 치르면 민주당은 최대 137석(지역구 130+비례 7), 통합당은 145석(지역구 119+미래한국당 비례 26), 정의당은 8석, 민생당은 6석, 국민의당은 4석을 얻을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민주당의 비례정당 창당은 결국 명분 대신 실리를 택한 것이다. 집권여당이 총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자신들이 비난해온 미래통합당과 똑같은 방식으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민주당은 앞으로 ‘정치개혁연합'(가칭)’ 등 플랫폼 정당들을 일원화해 범여권 ‘비례정당’을 만들고 당명 확정, 당별 비례대표 후보 배분 등을 논의한다. 이후 총선에 당선되면 각각 정당으로 흩어진다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우선 범여권 정당의 반발과 공조 이탈 가능성이 크다. 정의당은 비례연합정당 참여 없이 ‘마이웨이’ 고수를 예고했다. 이정미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도로에서 상대방이 과속하고 신호 위반하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같이 그런다고 하면 대형사고가 나는 것”이라며 “정의당마저 그런 대열에 합류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선거법 개정의 파트너인 정의당이 빠진다면 말만 ‘연합’일 뿐 ‘도로 비례민주당’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무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다른 군소 정당과 비례대표 후보 숫자, 순번 등을 두고 갈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군소정당 연합으로 구성되는 비례대표 후보 명단의 경쟁력이 약할 경우, 민주당 지지자의 표심이 흩어질 가능성도 있다. 군소정당 비례대표 후보들의 인사 검증을 놓고 논란이 생길 여지도 남아 있다.
여당이 ‘선거제 개혁’이라는 스스로의 명분을 포기하면서 중도층의 이탈도 예상된다. 무당층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경우 수도권 접전 지역에서는 당락의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