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다렸던가. TV조선 트로트 오디션 예능 ‘미스터트롯’의 대미를 장식할 결승전 얘기다. 방송 내내 진기록을 세운 미스터트롯 결승전에 방송계 안팎의 모든 관심이 쏠렸다. 결과는 맥 빠졌다. 12일 결승전 때 서버가 터지면서 대국민 문자투표 집계를 방송 내 끝마치지 못했고, 결국 최고의 기량을 뽐낸 도전자 7명(김희재 김호중 영탁 이찬원 임영웅 장민호 정동원) 중 우승자도 가리지 못했다. 제작진 측은 “긴 시간 결과 발표를 기다린 시청자 여러분에 대한 예의로 집계가 완료되는 대로 발표할 수 있게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고 했던가. 미스터트롯의 이런 ‘대형 방송사고’에도 위로의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투표결과 발표를 두고 나온 일련의 결정에 왠지 모를 ‘품격’이 느껴져서다. 이런 감정은 근래 오디션 예능을 둘러싸고 벌어진 갖가지 사건·사고들을 보면 더 선명해진다.
오디션 예능은 시청자 정서를 정확히 겨냥하는 지점이 있었다. 출중한 능력과 갖은 노력에도 여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이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얼개의 포맷은 위로를 전하기에 충분했다. 취업난이나 주거난 등에도 삶을 끈기 있게 일구는 시청자들과 오디션 도전자들이 꼭 알맞게 포개져서다. 10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슈퍼스타K’는 초야에 묻힌 스타들을 배출해내며 오디션 예능 시대를 열어젖혔다.
그러나 슈퍼스타K가 쏘아올린 오디션 붐은 채 10년을 가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추락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7월 엠넷 ‘프로듀스X101’의 투표 조작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였다. 해당 프로그램이 배출한 그룹 엑스원 멤버 11명의 득표수에 일정 패턴이 반복된다는 점을 시청자들이 발견했고, 수사를 거쳐 이 같은 조작 논란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프로듀스48’ 등 이전 시리즈에서도 유사한 잘못이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공정하다”는 오디션 예능에 대한 신뢰와,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오디션 신화는 함께 바닥을 쳤다. 프로듀스 사태는 알음알음 문제를 처리하던 방송가의 안이한 제작 관행과 시청자를 소비자 정도로만 여기는 낡은 사고방식 등이 합쳐져 생긴 문제였던 셈이다.
미스터트롯은 이런 교훈을 깊이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결승전 당시 진행자 김성주는 제작진을 대신해 “현재 1위부터 7위까지 표차가 접전이고 박빙이라 대충 비율이 이렇다고 발표하기엔 기대가 너무 크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며 “소중한 표를 반드시 모두 반영해 더 정확하고 공정하게 발표하겠다”고 했다. 제작진 역시 “최종결과가 발표된 후 투명한 결과를 증명하기 위해 로 데이터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완벽한 마무리를 짓겠다는 것이었다.
결승전 사고에 빛이 바랜 부분도 있으나 초조해만 할 건 아닌 듯하다. 지금껏 이뤄온 성과들이 이미 대단해서다. 지난 1월 2일 첫 방송부터 12%(닐슨코리아)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미스터트롯은 전작인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의 인기를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지난해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거둔 종편 최고 시청률(23.8%)를 방송 단 5회 만에 찍어누르기도 했다. 결승전은 35.7%라는 기념비적 기록을 세웠다.
앞서 받은 논란들에 대해 체면치레를 하는 결정이기도 했다.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은 그 인기만큼이나 눈총도 많이 받았다. 송가인 등 걸출한 인재를 배출한 미스트롯은 프로그램 초반부터 선정성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미스코리아 형식이나 군부대 공연 등이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비판이었다. 미스터트톳 역시 초반 출연자의 학벌이나 외모를 괜스레 부각했다. 9세부터 45세까지 뛰어난 실력을 갖춘 다양한 도전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괜한 문제를 일으키는 꼴이었다.
확실한 끝맺음을 위해 정진한다는 이번 선택으로 미스터트롯은 오디션 예능의 의미와 역할을 보여줬다. 보석과 같은 인재들을 시청자들과 함께 공정하게 발굴해내고, 이들을 다시 시청자 품에 안겨주는 일. 청중에게 희망을 주는 일 말이다. 결과는 나오기 전이지만 얼마간 성공한 듯 보인다. 많은 시청자가 미스터트롯에 참여한 도전자 모두 우승자와 다름없다고 생각해서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