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목사가 신촌에 있는 우리 황금마차 클럽에 가끔 온다는 소식은 신촌 유흥가 바닥에 금세 퍼졌다. 업소 오빠들은 그를 '호구 목사'라고 불렀다. 40대 초반으로 적당한 키에 얼굴에는 늘 미소가 흘렀다. 공부만 잘해 출세한 공무원 같기도 했다.
그 호구 오빠를 클럽으로 데려온 이는 서울 청계천 끝자락 한양대 근처 뚝방에서 빈민 운동한다는 젊은 전도사였다. 거센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었다. 눈빛이 총명했는데 그만큼 눈동자가 빨리 돌아갔다. 호구 목사는 매번 강제로 끌려오다시피 업소로 들어오곤 했다.
내가 업소 오빠들에게 그 전도사라는 사람이 하도 궁금해 물은 적이 있다.
"오빠들, 전도사나 목사면 교회 대빵 아냐? 근데 왜 이런 데서 모임을 해요?"
그들이 바보 같은 질문해대는 국민학생 대하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미친년,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자고로 불알 달린 것들은 다 음흉해. 겉으로는 고상한 척 하지만 한 풀만 벗기면 그놈이 그놈이야. 그런 놈들에 속아가는 년이 너 같은 년이고."
웨이터 '아랑드롱'이라는 이름표를 찬 영철 오빠가 그렇게 말했다. 저런 양아치 같은 놈에게 질문한 내가 미친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새끼.
아무튼, 그 전도사는 호구 목사에게 '형님'이라고 불렀다. 사투리가 심한 데다 말도 빨라 나도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한국어 단어 정도나 이해하는 호구 목사가 말뜻을 이해했을지는 의문이다.
호구 목사는 눈치껏 전도사의 태도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 자세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전도사 이름은 홍진완이라고 들었다. 이런 업소 출입하는 높은 분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느라 '사장' 또는 '선생'이라고 붙이곤 했는데 그의 동행들은 그를 '홍 사장'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술잔이 돌고 다들 거나하게 취했을 때 그의 선배인듯한 사람이 '홍 사장'을 '어이 홍진완 전도사'라며 실수하자 그가 마시던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화를 낸 적도 있었다.
"아니 형님, 선수끼리 왜 이럽니까. 우리끼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옆에 아가씨들도 있는데…. 형님이 그리 눈치가 없으니 선교사들이 싫어하는 거 아닙니까. 교계 중요한 얘기를 줄줄 흘리고 다니시니까요."
"아니 이 친구 지금 뭐라는 거야. 뭘 흘려. 보자 보자 하니까. 저 일본인 형님 하나 잡아서 살만하니 보이는 게 없냐. 위아래도 없어?"
술판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홍 사장 옆에 앉은 영미가 홍 사장 양복으로 튄 술을 닦으며 간드러지게 말했다.
"오빠들 우리 선생님이 놀라셨어요. 외국인 앞에서 우리가 이러면 안 되잖아요. 더구나 일본 사람인데…."
그들은 영미가 아니라 호구 오빠의 눈치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리만치 동요가 없었다. 그 기운에 잠깐의 소란이 사그라졌다.
그분의 이름이 노무라 모토유키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외우기 어려워 나는 그냥 '노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계속>
글·사진=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