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해결 대신 “마스크 써라”…신화가 자라났다 [이슈&탐사]

입력 2020-03-13 11:00 수정 2020-03-13 11:00

한국 사회에서 마스크가 필수적인 보호구로 인식된 것은 황사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다. 재난 수준의 미세먼지를 겪으면서 마스크는 ‘위험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으로 국민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이 믿음은 위기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마스크를 쓰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마스크 착용을 권하는 것 외에 다른 미세먼지 대책이 없던 정부의 선택과 그로 인한 마스크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있다.

시계를 돌려 2007년 어느 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한국을 찾아왔다고 가정해 보자. 마스크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구입하기 쉬운 ‘필터 있는 방역용 마스크’가 존재하지 않았다. 의료진이나 역학조사를 하는 사람들이 쓰는 방역용 마스크가 있었지만 일반인이 손에 넣기는 쉽지 않았다.

일반인용으로는 ‘방한대’와 ‘보건용 마스크’가 있었다. 추위를 막아주는 방한대는 공산품으로 분류돼 식품의약품 당국의 관리를 받지 않았다. 호흡기 보호를 위한 보건용 마스크는 당국의 허가가 필요한 의약외품이었지만 필터가 부착돼 있지 않았다.

2008년 황사 마스크의 탄생
지금처럼 필터가 있는 보건용 마스크는 정부의 2차례 행정 조치를 거치면서 탄생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전신인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007년 9월 시중에서 팔리는 ‘황사용 마스크’를 의약외품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업체가 허가 없이 황사 마스크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효과를 모르겠고 가격만 비싸다’는 불만이 제기되자 정부가 나선 것이다.

의약외품으로서 첫 황사용 마스크는 2008년 3월 나왔다. 황사용 마스크는 필터를 넣어 KF80 기준을 충족해야 했다. KF80은 평균 0.6㎛ 크기 입자를 80% 이상 차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시 방역용은 KF94로 기준이 더 높았다. 황사용 마스크가 왜 KF80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황사용 마스크는 그럼에도 겉포장에 ‘의약외품’이 적혀 있어 시중에서 잘 팔렸다. 식약처와 다른 정부기관은 허가받은 제품만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정부가 열어준 황사용 마스크 시장에 제조, 판매업자들이 뛰어들었다. 시장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식약처는 2014년 9월 마스크 관련 두 번째 행정 조치를 했다. 황사용 마스크와 방역용 마스크를 ‘보건용 마스크’로 통합한 것이다. 기존의 필터 없는 보건용 마스크는 의약외품에서 제외했다. 일반인의 호흡기 보호를 위한 마스크는 7년여간 두 차례 행정 조치로 ‘필터가 없어도 되는 것’에서 ‘필터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둔갑했다.

그 사이 마스크 효과에 관한 과학적 사실이 변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정부 입장에서 미세먼지로 성난 민심을 달랠 수단이 ‘인증된’ 마스크 밖에 없었다. 장재연 아주대 의대 명예교수는 이 대목을 ‘정부가 국민을 정치적으로 호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공기가 오염이 됐으면 오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대신 국민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했다”며 “전 세계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마스크를 쓰라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스크 통합 조치에 따라 2014년 이후 판매되는 마스크에는 ‘황사·방역’ 표시가 돼 있다. 미세먼지 차단과 감염 예방에 모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환경부와 기상청 등은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황사·방역용 마스크를 쓰라고 권고한다. 미세먼지로 고통을 겪는 시민들은 마스크를 ‘만능열쇠’이자 필수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생명줄로 여기는 ‘신화’의 기반은 이때 조성됐다.

황사·방역용 마스크는 최근 수년간 엄청나게 팔렸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3년 41억원이던 마스크 생산실적은 2018년 1193억원으로 무려 30배 가까이 증가했다.

식약처가 마스크가 국민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다. 식약처는 2018년 7월 감사원 감사에서 보건용 마스크의 주의사항을 미흡하게 표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감사원은 미국과 싱가포르, 일본, 홍콩 등의 예를 들며 “마스크 착용으로 호흡이 불편한 경우에 대한 주의사항을 홍보하거나 제품에 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등 국가는 KF94에 해당하는 N95 마스크 착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지 않는다. 장 교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마스크에 관한 여러 주의사항을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식약처는 공산품 제조를 관리하는 수준 밖에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감사원 지적을 받아 들였다. 그해 10월 이후 생산된 황사·방역용 마스크에는 “임산부, 호흡기·심혈관 질환자, 어린이, 노약자 등은 마스크 착용으로 호흡이 불편하면 사용을 중지하고, 필요하면 의사 등 전문가와 상의하라”는 경고 문구가 적혀 있다.

‘미세먼지에 효과’ 과학적 근거 아직 없어
정부는 지난해 보건용 마스크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의뢰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환경부 의뢰로 김영민 성균관대 연구교수가 수행한 ‘미세먼지 마스크 건강피해 저감효과 분석 및 향후 추진방안 마련’ 연구에 따르면 보건용 마스크는 착용자의 건강에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

해당 연구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증한 KF80 마스크를 착용했을 때와 마스크를 쓰지 않았을 때를 비교·분석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건강한 성인이 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48㎍/㎥로 ‘나쁨’ 수준인 실외에서 한 시간 걸었을 때 마스크를 썼다고 해서 건강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마스크를 착용한 경우 심박변이도 등 일부 지표가 다소 개선됐지만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는 아니었다. 도리어 마스크를 착용하고 걸은 경우 1분 동안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의 양(분당 환기량)이 4.5%가량 유의하게 줄었다.

해당 연구는 오히려 호흡 기능이 약한 어린아이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면 숨쉬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내에서 아동이 KF80 마스크를 착용하면 산소 섭취량은 10.6% 감소했고 분당 환기량은 8% 정도 감소했다. 김 교수는 “호흡기가 민감한 어린이 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예방을 위해 실내에서 내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면 숨 쉬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스크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식약처가 지난 3일 코로나19와 관련해 개정해 발표한 마스크 착용 권고 사항에 따르면 감염 의심자와 접촉해 감염 위험성이 있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가 아닌 한 일반인은 보건용 마스크를 늘 착용할 필요가 없다. 특히 혼잡도가 낮은 야외나 가정 내, 개별 공간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KF80 이상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경우는 의료기관을 방문하거나 기침, 콧물 등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대중교통 운전사나 택배기사, 역무원 등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 환기가 잘 안되는 공간에서 2m 이내 다른 사람과 접촉할 때도 KF80 이상 마스크를 써야 한다. 코로나19 의심자를 돌보는 사람은 KF94 이상 마스크를 써야 한다.


최원석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건강한 일반인이 야외나 밀집되지 않은 실내 공간을 거닐 때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서영준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도 “건강한 사람은 굳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고 독감 예방하듯 개인위생에 신경 쓰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대중교통을 이용거나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전문가의 말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지하철이나 노래방처럼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는 예방 차원에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