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데미안’은 고정 배역이 없는 2인극이다. 젠더 프리 캐스팅을 넘어 캐릭터 프리 캐스팅을 도입했다. 공연에는 정인지, 유승현, 전성민, 김바다, 김현진, 김주연이 출연한다. 이들 모두 성별과 관계없이 ‘싱클레어’ 또는 ‘데미안’을 연기한다.
이대웅 연출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11일 열린 프레스콜에 참석해 “젠더 프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남자 역할을 여성이 연기하는 게 아니라 한 배우가 배역을 다 소화한다”고 설명했다.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선과 악을 경험하고, 격동하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면서 흐릿한 자아를 선명히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무대에는 카인과 아벨과의 대화 등 원작을 보며 상상했을 장치가 재현됐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쓸 때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 연출은 “헤세가 융에 영향을 받아서 쓴 부분이 뭘까 찾아봤다”며 “한 자아 안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동시에 있다고 한다. 싱클레어와 데미안도 사실 아니마(남성 속 여성성)와 아니무스(여성 속 남성성)가 같이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게 접점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오세혁 작가는 “나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대본 첫 장에 ‘남녀의 구분이 없으며 배우가 양쪽을 다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그래야 서로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배우와 관객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자기가 원하는 표정을 짓고 숨을 크게 한번 쉬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배우 정인지는 머릿속에서 성별을 지웠다. 그는 “소설과 대본을 읽으면서 ‘싱클레어는 진정 데미안을 만났을까. 데미안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사실 우리는 싱클레어가 데미안이기도 하고 데미안이 싱클레어이기도 한 성장기를 겪는다. 역할이 바뀌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데미안은 다음 달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열린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